[세상만사-남도영] 컨테이너, 시베리아를 달리다

입력 2015-11-12 18:21

부산을 출발한 컨테이너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정부의 로드맵에서나 봤음 직한 시나리오가 실제로 일어났다. 현대모비스 얘기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2∼9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한 자동차 부품 공급루트를 점검했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운송을 시작한다. 부산에서 출발해 인도양, 지중해, 대서양을 돌았던 2만2000㎞의 항로는 9200㎞로 줄었고, 50일 걸리던 운송시간은 28일로 줄었다.

현대모비스는 2012년에도 시베리아 횡단 물류를 구상했다가 접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루블화의 평가절하와 러시아의 인프라 확충으로 가격경쟁력이 생겼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시간과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니 시베리아 횡단철도 이용 루트가 기존 배를 이용한 루트보다 10% 정도 이익이었다”고 했다. 10%의 가격경쟁력이 2012년 검토만 했던 시베리아 횡단철도 물류 구상을 현실화한 동력이었다. 가격경쟁력, 돈은 참 무섭다. 현대모비스는 내년부터 자동차부품을 실은 컨테이너 1300개를 부산에서 러시아 모스크바와 예카테린부르크로 실어 나를 계획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0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주창했다. 한반도와 중국,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 유라시아 국가 간 경제협력을 통해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북한 개방을 유도해 통일 기반을 자연스럽게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부산-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물류와 에너지 네트워크 구축이 핵심 사업이다. 거대한 구상이었지만, 2년이 지나도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현대모비스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어울릴 만한 사업을 시작했다. 정부가 주도하거나 등을 떼민 사업도 아니었다. ‘가격경쟁력’이 현대모비스를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이끌었다.

현대모비스의 물류는 한 곳이 빠져 있다. 북한이다. 제대로 된 육상 물류라면 부산에서 출발한 컨테이너가 한반도종단열차(TKR)를 타고 북한을 관통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연결돼야 한다. 현대모비스의 컨테이너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항까지 900㎞를 3일 동안 가야 한다. 보스토치니항에서는 통관을 위해 이틀을 기다려야 한다. 하루면 갈 거리가 5일이 걸린다. 한반도종단열차가 가능해지면 물류 시간과 비용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기업들은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컨테이너를 열차에 실을 것이다.

5·24조치가 발효된 게 벌써 5년이 넘었다. 남북 간 일반교역 및 물품 반·출입 금지, 대북 신규투자 금지, 국민의 방북 불허 등이 주요 내용이다. 모든 투자와 교류를 막아 놓고 통일이 대박이라고 하면 기업들은 할 일이 별로 없다. 국내 3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500조원이 넘는다. 정부가 투자를 채근해도 기업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투자할 만한 곳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년에 외국에서 철광석을 7000만t 정도 수입한다. 북한 최대 철광산인 함경북도 무산광산의 매장량이 30억t 정도다. 호주 등에서 철광석을 수입하는 포스코에 무산광산 개발과 관련 물류 사업에 투자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리고 정부가 이를 보증한다면 포스코 자원·물류 담당자들의 계산기는 맹렬한 속도로 돌아가지 않을까. 금강산 관광만 재개돼도 위기에 빠진 현대그룹이 다시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북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향후 20년간 1만 달러 수준으로 높이는 데 579조원(5000억 달러)의 투자비용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남도영 산업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