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자녀가 사춘기가 되면 ‘전에 알던 아이’가 사라지고 어디선가 낯선 이가 나타난 것 같다고 느낀다. 학교에서 있던 일을 재잘거리던 유쾌한 소녀가 어느새 ‘몰라’ ‘싫어’ 등 단답형으로만 답하는 시큰둥한 아이가 돼버린다는 것이다.
평소 정리를 잘하고 순종적이던 아이가 한순간에 청소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 방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엄마가 “방이 너무 더러운 것 같네”라고 조심스레 물어도 “뭐 어때? 난 좋은데”하며 퉁명스레 답한다. 평소 좋아하는 음식인데 부모가 먼저 먹자고 하면 자기는 다른 걸 먹겠다고 한다.
자녀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모가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때 서로 말꼬리라도 잡으면 둘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엇나가곤 한다. 이런 사춘기 자녀의 밑도 끝도 없는 ‘불순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0대 청소년은 흔히 ‘청개구리’ 시기로 불린다. 타당한 대안도 없으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등 권위자가 말해서 듣지 않겠다는 동기가 충천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청개구리 동화처럼 ‘나중에 엄마 돌아가시면 개골개골 땅을 치고 후회할’ 미성숙한 행동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독립된 주체로 자기를 세워가는 ‘분리-개별화’ 과업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인생의 각 단계마다 반드시 맞아야 할 변화가 있고 달성할 발달적 과제가 있다. 청소년기가 되면 누구나 ‘나는 누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고민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과는 구별되는 오롯한 나’에 대한 인식, 즉 ‘자아정체감’이라 부르는 마음의 핵을 형성한다.
청소년기에 자리 잡은 자아정체감은 마치 오뚝이의 무게중심과 비슷하다. 향후 살아가면서 이리저리 흔들리더라도 중심을 잡아주는 심리적 건강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오롯한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기존에 무조건적으로 수용해 온 부모나 교사 같은 권위와 거리를 두는 일이다. 주어지는 대로 움직였던 과거와 달리 부족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순수한 나’를 찾아가며 자아정체감이 형성되는 것이다.
때문에 사춘기 청소년의 행동을 순종과 불순종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판단하는 건 부적절하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는 연습을 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며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적 순종’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사무엘이 강조한 ‘제사보다 나은 순종’(삼상 15:22)의 본래 의미다.
자녀의 ‘청개구리 현상’을 만나면 성장으로 기쁘게 해석하자. 역설적이게도 아이의 성장은 부모의 인내와 수용, 낮아짐을 요구한다. 그러기에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일은 부모만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15세상담연구소장)
[한영주의 1318 희망공작소] 청개구리의 순종
입력 2015-11-13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