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수사 용두사미] “주인 없는 포스코, 주인이 너무 많다”

입력 2015-11-11 21:22

“주인 없는 포스코에 주인이 너무 많다.”

포스코의 전직 고위임원이 검찰 조사를 받으며 내뱉은 말이다. ‘정준양 체제’의 포스코가 그만큼 정치권에 휘둘렸음을 토로한 것이다. 244일간 포스코 비리를 수사한 검찰도 ‘포스코 사유화’가 이명박정부 시절 포스코 비리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봤다. 최고경영진이 정치권력과 유착하다보니 이른바 정권실세들과 이들의 비호를 받는 세력의 거듭된 부당거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검찰은 정준양(67) 전 회장과 정동화(64) 전 부회장, 이상득(80) 전 의원 등 포스코 사유화의 정점으로 꼽은 이들을 모두 불구속 기소했다. 밝혀낸 혐의에 비해 ‘나약한 선택’을 한 것이다.

정 전 회장의 공소사실 대부분은 성진지오텍 인수 과정에서의 1592억원 배임 혐의로 채워졌다. 포스코가 2010년 성진지오텍을 인수하면서 최대 주주인 전정도(56)씨에게 부당한 특혜를 줬다는 게 요지다. 인수·합병(M&A)은 철저히 정 전 회장과 전모(55) 전략사업실장 라인을 통해서만 진행됐다. 성진지오텍은 2009년 말 부채 5545억원에 부채비율 1613%일 정도로 재무상태가 엉망인 회사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인수 타당성 검토를 무단으로 생략했으며, 이사회 보고도 누락하거나 허위내용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가격 협상도 없이 전씨 요구조건을 무조건 수용한 특혜 인수”라고 말했다. 검찰이 압수한 산업은행 팀장의 수첩에는 ‘포스코가 잘못된 M&A로 독박을 썼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다만 사건 연루자들이 철저히 함구하면서 이 거래의 배후는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정 전 회장은 처사촌동서 유모(68)씨를 협력사 코스틸에 고문으로 취직시켜 4억6100만원을 지급받게 한 것 외에 코스틸 대표에게서 491만원 상당의 ‘로마네콩띠’ 와인도 선물 받았다.

포스코 2인자였던 정동화 전 부회장도 지난 정권 실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했다. 그는 ‘왕차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으로부터 당시 건설교통부 고위공무원의 고교 동창을 포스코건설에 취직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해당 인물을 2011년 초에 토목환경사업본부 상무로 영입했다. 정 전 부회장은 이에 대한 대가로 2012년 8월 ‘4대강 사업’ 유공자로 뽑혀 금탑산업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박 전 차관은 검찰의 소환통보에 불응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을 다섯 차례나 불러 조사했지만 장고 끝에 구속영장 청구를 접었다. 정 전 부회장은 두 차례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지난달 8일 먼저 불구속 기소된 이 전 의원을 포함해 주 책임자 모두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게 된 것이다.

검찰은 정 전 회장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이유로 뇌물 수수자인 이 전 의원을 불구속한 상황에서 공여자에 대해 보다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은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성진지오텍 인수 관련 혐의는 기록이 방대하고 참고인만 30여명이라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충분한 실체 판단이 어려울 것으로 봤다고 한다. 영장 기각 시의 파장을 우려했다는 말로도 읽힌다. 수사팀 외부의 한 검사는 “피의자 구속 여부가 곧 수사 성패의 가늠자는 아니지만 영장 청구마저 포기한 것은 소심한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수사 방식과 강도를 놓고 수사팀과 대검 수뇌부 간의 균열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