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진통] 적대적 공생?… 말로만 시급, 속으론 느긋

입력 2015-11-11 22:05 수정 2015-11-11 22:08
여야 지도부가 1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논의를 위한 ‘4+4 회동’을 갖고 있다. 한 농어촌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이 항의차 회동 장소로 찾아왔다가 ‘농어촌 지방 죽이는 선거구 획정’이라는 팻말을 꺼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문재인 대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원 유철 원내대표. 이병주 기자

내년 국회의원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 획정 시한(11월 13일)이 코앞에 닥쳤지만 여야는 여전히 획정 기준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구 간 인구편차가 2대 1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지 1년이 넘도록 여야가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얘기다. 말로는 선거구 획정이 시급하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속내는 급할 것 없다는 투다. 현역 기득권 앞에 여야가 ‘적대적 공생’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등 여야 지도부는 10일 심야회동에 이어 11일에도 만났지만 접점을 못 찾았다. 여야는 이날 하루 ‘3+3’, ‘4+4’ 회동을 잇달아 여는 등 부산스럽게 움직였는데 소득은 없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선거구 재조정은 이미 1년 전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헌재는 지난해 10월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 비례를 3대 1 이내로 규정한 현행 선거법 조항은 헌법의 평등선거 원칙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그러면서 20대 총선부터는 새 기준을 적용하라고 했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은 선거구가 늘고, 농어촌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정치권은 “초대형 쓰나미가 불어닥쳤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도 국회는 허송세월했다. 지난 3월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7월 사상 첫 독립 기구로 출범한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도 제 역할을 못했다. 획정 기준을 정했어야 할 정개특위는 “당 지도부가 결단을 내려달라”며 ‘오더’만 기다렸다. 그 와중에 정개특위 여야 간사는 ‘의원정수는 현행 300명을 유지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국민 정서를 의식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협상의 폭을 너무 좁혀놨다는 비판을 샀다. 지역구를 늘리고 그만큼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새누리당과 비례대표는 줄일 수 없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구조가 돼버린 것이다.

여야 당대표는 “정개특위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책임을 미루다가 획정 시한이 임박해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서자 부랴부랴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뒤늦게 지역구 수를 소폭 확대하는 방안까지 검토됐지만 여야의 합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회 관계자는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현역 의원에게 유리하다는 건 정설”이라며 “당 지도부 입장에서 봐도 선거구 조정으로 피해를 보게 될 의원들의 원성을 미리 살 이유가 없다”고 했다. 실제 “올해 말까지만 획정을 마무리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서울대 정치학과 박원호 교수는 “지역구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가 없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고, 비례대표는 내년에 또 할 수 없어 ‘지역구를 늘리자’는 주장만 나온다”며 “현역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다 보니 가장 손쉬운 비례대표 축소만 거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국회로부터 독립된 획정위가 있지만 결국 국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일정에 맞춰 획정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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