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회의원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 획정 시한(11월 13일)이 코앞에 닥쳤지만 여야는 여전히 획정 기준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구 간 인구편차가 2대 1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지 1년이 넘도록 여야가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얘기다. 말로는 선거구 획정이 시급하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속내는 급할 것 없다는 투다. 현역 기득권 앞에 여야가 ‘적대적 공생’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등 여야 지도부는 10일 심야회동에 이어 11일에도 만났지만 접점을 못 찾았다. 여야는 이날 하루 ‘3+3’, ‘4+4’ 회동을 잇달아 여는 등 부산스럽게 움직였는데 소득은 없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선거구 재조정은 이미 1년 전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헌재는 지난해 10월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 비례를 3대 1 이내로 규정한 현행 선거법 조항은 헌법의 평등선거 원칙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그러면서 20대 총선부터는 새 기준을 적용하라고 했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은 선거구가 늘고, 농어촌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정치권은 “초대형 쓰나미가 불어닥쳤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도 국회는 허송세월했다. 지난 3월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도, 7월 사상 첫 독립 기구로 출범한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도 제 역할을 못했다. 획정 기준을 정했어야 할 정개특위는 “당 지도부가 결단을 내려달라”며 ‘오더’만 기다렸다. 그 와중에 정개특위 여야 간사는 ‘의원정수는 현행 300명을 유지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국민 정서를 의식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협상의 폭을 너무 좁혀놨다는 비판을 샀다. 지역구를 늘리고 그만큼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새누리당과 비례대표는 줄일 수 없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도저히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구조가 돼버린 것이다.
여야 당대표는 “정개특위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책임을 미루다가 획정 시한이 임박해 국회의장이 중재에 나서자 부랴부랴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뒤늦게 지역구 수를 소폭 확대하는 방안까지 검토됐지만 여야의 합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국회 관계자는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수록 현역 의원에게 유리하다는 건 정설”이라며 “당 지도부 입장에서 봐도 선거구 조정으로 피해를 보게 될 의원들의 원성을 미리 살 이유가 없다”고 했다. 실제 “올해 말까지만 획정을 마무리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서울대 정치학과 박원호 교수는 “지역구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가 없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고, 비례대표는 내년에 또 할 수 없어 ‘지역구를 늘리자’는 주장만 나온다”며 “현역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다 보니 가장 손쉬운 비례대표 축소만 거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국회로부터 독립된 획정위가 있지만 결국 국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일정에 맞춰 획정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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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11 22:05 수정 2015-11-11 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