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수사 용두사미] ‘실세’들의 뒷돈 챙기기 밝혀졌지만 ‘환부’ 제거 한계

입력 2015-11-11 21:21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의 포스코 비리 수사는 민영화된 기업의 회장직 인선에 정권실세들이 개입해 뒷돈을 챙겼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계를 안고 출발한 최고경영자는 비정상적 인수·합병(M&A), 특정업체 일감 몰아주기 등 정치권의 부당한 요구에 끊임없이 응할 수밖에 없었다. 잇단 부당거래의 결과는 포스코의 실적 하락과 노동자들의 희망퇴직으로 돌아왔다.

의미 있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포스코 수사는 단숨에 환부로 파고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주요 피의자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거나 법원에서 기각된 점 역시 논란이 됐다.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11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포스코의 재도약을 꿈꾸는 이들에게 작은 생각의 씨앗을 제공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왜 오래 걸렸나

포스코 수사는 첫 압수수색부터 피의자 신병처리 마무리까지 244일이 걸렸다. 그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진행한 대기업 관련 비리 수사들에 비해 오랜 기간이다. 2011∼2012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중희)의 SK 경영진 계열사 자금횡령 수사는 첫 압수수색부터 최태원(55) 회장 불구속 기소까지 69일이 소요됐다. 2013년 CJ그룹 횡령·조세포탈 사건을 수사한 특수2부(부장검사 윤대진)는 첫 압수수색부터 이재현(55) 회장 구속 기소까지 59일을 썼다.

세 대기업 수사 모두 최고경영자가 비리의 정점에 있었고, 그룹이 공공성을 잃고 사금고화됐다는 사실을 밝혔다. 엇비슷한 피의자들의 지위나 수사 의의에도 불구하고 기간에 차이가 생긴 이유는 수사의 범위에 있다. SK와 CJ의 경우 회장 개인비리가 주된 타깃이었다. 포스코는 회장 선임 과정부터 시작된 교묘한 정경유착이 수사 중 확인된 사례다. 정치자금 조달 통로로 의심되는 포스코 협력업체들이 많았지만 검찰이 스스로 범위를 한정할 정도였다.

수사기간의 차이는 법정에 세운 피고인 규모로도 설명된다. 포스코 수사로 32명이 기소됐다(포스코 관련 13명, 포스코건설 관련 19명). SK그룹 수사 당시에는 8명, CJ그룹 당시에는 5명 수준에서 기소가 마무리됐다. 검찰은 구속영장 기각 논란에 대해 “19명 중 2명만 기각됐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치권 거물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많은 피의자와 참고인은 검찰 수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 정동화(64)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의 동문으로 포스코 직원들을 부하처럼 대했고 포스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장모(64)씨의 일화는 충격적이다. 그는 검찰 조사를 받던 중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휴대전화를 버렸다. 검찰이 휴대전화를 꺼내 복구해 보니 이명박정부에서 경제 분야 요직에 있던 이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낸 상태였다. “제가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과연 부당했나

포스코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먼지떨이식 수사’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국회에서 검찰을 향해 “내가 아는 포스코는 그런 기업이 아니다” “재탕 수사”라고 일갈했던 이병석(63)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는 발언 이후 포스코로부터 기획법인을 통해 검은돈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검찰은 계속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태다.

검찰은 포스코의 방만경영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포스코 내부에서도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다. 실제 정준양 전 회장이 재임한 5년간 포스코의 영업이익은 4조원 줄었고, 부채는 20조원 증가했다. 최고등급이던 신용등급도 하락했고,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은 6000억여원을 지원받고도 결국 지난달 워크아웃 절차에 들어갔다. 수뇌부가 결정한 부실인수의 대가는 애먼 임직원 300여명의 감축이었다. 이 회사는 아직도 희망퇴직 신청을 접수하는 중이다. 포스코는 수사 중 권오준(65) 회장이 윤리경영을 골자로 자체 쇄신안을 발표하면서도 검찰의 환부 도려내기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검찰에 제공한 자료를 정 전 회장과 정동화 전 부회장 측에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정 전 회장과 전모(55) 포스코건설 전무의 변호사 비용을 댄 사실도 드러났다. 이경원 나성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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