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독재 종식이냐, 식민지 청산이냐… 국호논쟁은 ‘미얀마판 역사전쟁’

입력 2015-11-12 04:10
정건희 기자
미얀마 민주화의 영웅 아웅산 수치(70)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총선 압승으로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투표 이후 사흘째인 11일(현지시간)에도 지지부진한 개표 상황은 여전히 변수다. 때문에 미얀마 군부의 ‘1990년 선거불복 사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이날 하원의원 당선을 확정지은 수치 여사는 “시대가 변했고 민주화 역량은 성장했다”며 대통령·군부에 4자 회담을 제안하는 등 자신감을 내비쳤다. 테인 세인 대통령은 “만남 제안을 수용하며,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준수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민주화와 개혁이 임박한 가운데 미얀마 대신 ‘버마(Burma)’라는 국호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수치 여사가 그간 버마를 선호해 왔고, 미얀마를 1988년 군부 쿠데타의 유물로 해석해 “26년 만에 국호를 되찾을지 모른다”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역사와 어원을 되짚어보면 ‘미얀마냐 버마냐’를 둘러싼 맥락은 결코 간단치 않다.

국제사회에서 미얀마가 버마로 불리기 시작한 건 1886년 미얀마가 영국령 인도의 일부로 편입될 즈음부터다. 주민 절반 이상이 버마족이라는 점에서 편의상 명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8년 독립 이후에도 버마로 남아있던 미얀마는 1989년 군사정부의 고유명칭 환원 조치를 통해 미얀마로 거듭난다.

군부는 버마가 식민지시대의 잔재인 데다 소수민족 연합국가의 성격을 대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내새웠다. 반면 민주화 세력은 군부가 과오를 감추려 국명을 변경했다며 버마의 정통성을 강조해 왔다.

여기까지가 서구적·정치적 관점에서 본 국호 변천사라면 역사·문화적 맥락은 사뭇 다르다. 식민통치 이전 이 지역이 버마가 아닌 미얀마로 불렸다는 점부터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1세기 중엽 이미 미얀마라는 명칭이 역사에 등장했으며 중국인들은 꽤 오래전부터 미얀마를 면(緬·중국어 발음으로 ‘몐’) 또는 면전(緬甸)으로 불러 왔다. 1989년의 국호 변경은 통념과는 달리 ‘복고(復古)’인 셈이다.

두 명칭이 단순히 차음(借音) 방식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 ‘동의어’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미얀마 권위자인 박장식 부산외대 교수는 관련 저술에서 “미얀마어는 문어체와 구어체 두 가지 문체가 존재하는데 미얀마는 문어체, 버마는 구어체 표현일 뿐”이라며 “서로 다른 문체의 어법을 지닌 한 단어”라고 설명한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대한민국’과 ‘한국’ 정도의 차이랄까.

종합하면 미얀마와 버마를 둘러싼 논쟁은 실체적인 판단 근거보다는 정치적 대립에서 비롯된 의미 부여의 문제에 가깝다. 군부와 민주화 세력의 각기 다른 지향점이 국호라는 상징으로 대변됐을 뿐이다. 여기에 영미 등 일부 서방 국가들이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아 의도적으로 미얀마 대신 버마로 칭해온 관행이 덧씌워져 있다. ‘미얀마는 군부독재, 버마는 민주화’라는 가치 중심적 이분법을 적용한다면 ‘옳고 그름’ 또는 ‘정상과 비정상’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우를 범하는 격이다. 결국 최종 판단은 국호를 사용하는 미얀마 국민의 몫이겠지만. 정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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