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청각장애 안고 클라리넷 연주 손정우군 “외로움과 고통 달래준 나의 악기야, 고마워!”

입력 2015-11-13 18:10 수정 2015-11-13 21:11
올해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손정우군이 지난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영산아트홀에서 열린 ‘사랑의달팽이’ 정기공연에서 클라리넷 연주를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클라리넷아, 고마워!” 손정우(18·선한목자교회)군과 클라리넷에 대한 이야기를 줄이면 이렇게 될 것이다. 청각장애인인 손군은 “클라리넷이 제 아픔을 치유해주는 것 같다. 클라리넷 연주를 하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가 활동하는 ‘사랑의달팽이’ 클라리넷 앙상블의 정기연주회가 있던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영산아트홀 공연장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어머니 박희수(44)씨도 함께했다.

연주를 앞둔 손군은 다소 긴장돼 보였다. 손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청각장애인 유소년으로 구성된 클라리넷앙상블 ‘사랑의달팽이’에서 활동했다. “좋은 소리를 내려면 소리를 잘 들어야 하는데 전 그렇지 못해요. 제가 부착한 ‘기계’의 상태에 따라 소리가 좋았다, 안 좋았다 그래요. 귀의 한계를 느낄 때 화가 나기도 하죠.”

그가 말하는 기계란 ‘인공 와우’를 가리킨다. 손군은 8세 때 귀에 인공 달팽이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안쓰러운 표정의 어머니 박씨가 설명했다. “4세가 되어서도 정우가 ‘엄마’ ‘아빠’란 말을 잘 안 했어요. 보청기를 끼고 거의 매일 언어치료를 하러 다녔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전정도수관확장증(EVAS)이라는 병이었어요.”

EVAS는 소리의 통로인 전정전도수관이 커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질환이다. “색맹처럼 유전되는 질환이더군요. 저와 정우아빠가 이 질환의 유전인자를 하나씩 물려준 거였죠. 우리가 차라리 만나지 않았다면 정우가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을 텐데….”

박씨는 그게 아직도 미안한 듯했다. 어머니는 청각훈련을 위해 7세 때부터 손군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켰다. “선생님 지시에 따라 피아노도 잘 치고 악보도 잘 읽었어요. 사랑의달팽이 앙상블에 들어가서도 잘 했고요.” 재능이 뛰어났느냐는 말에 어머니는 빙긋 웃었다. “잘한다는 게 뛰어나다는 게 아니고요. 하는 것 자체가 제겐 놀랍고 대단하게 느껴졌단 얘기예요. 호호.”

손군은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초·중·고교를 다녔다. 학교생활은 ‘소리 없는 전쟁’이었다. 친구들은 잘 못 듣는다는 이유로 그를 놀리고 따돌렸다. 등 뒤에서 욕설을 하고 복도에서 발을 걸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담임교사의 배려로 맨 앞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은 그에게 지우개 따위를 던졌다. 한 학생은 교사에게 “여기가 복지관입니까”라며 손군의 자리 배치에 항의했다.

결국 손군은 스스로 뒷자리로 갔다. 그는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나라에선 장애가 있는 아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놀리고 괴롭혀요. 선진국에선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거리낌 없이 도와준다는데…. 부족하면 돕는 게 이상적인 사회 아닌가요?”

그는 클라리넷 연주로 이 외로움과 고통을 달래곤 했다. “잘 안 들려서 더 열심히 해요. 엄마가 좋은 소리라고 하면 그렇게 소리가 나게 된 제 몸 전체의 감각을 기억하고 재생해요.” 보통 사람보다 몇 배 더 힘든 과정이다. 손군은 의지가 강하다. 중학교 때는 야구부에 가입해 새벽마다 연습을 하러 다녔다. 고교 2학년 때는 120㎏이 넘던 몸무게를 80㎏대로 줄였다.

“정우야, 손이 안 돌아간다. 살 좀 빼라”라는 클라리넷 선생님의 말에 자극받았다고 한다. 어느새 단원 30명인 사랑의달팽이 앙상블의 악장이 됐다. 지난해 열린 제15회 CBS 전국 청소년 음악 콩쿠르 관악부문 고등부에서 3위를 했다.

그는 6일 공연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정은원 클라리네티스트와 함께 연주했다. 멘델스존의 ‘클라리넷을 위한 협주곡 소품’이었다. “장애로 힘든 사람이 있잖아요. 어떤 분은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죠. 제가 열심히 연주해서 우리가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고 소중하게 쓰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아들이 열 살 되던 해부터 신앙생활을 한 손군의 어머니는 밝았다.

“정우가 하나님 안에서 자라는 걸 보면서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은 늘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손군은 대학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할 계획이다. 손군 모자는 함께 기도한다. 항상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 설 수 있게 해달라고.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