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성경적 의미… 초라한 초막으로 가라고 한 것은 풍요함 속 잃기 쉬운 기도 골방 되찾으라는 뜻

입력 2015-11-13 19:39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전통을 따라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추수감사절은 한 해 추수를 마친 후 지키는 초막절이다. 유대력으로 7월 15일부터 1주일 동안 지키는 초막절은 삼국시대부터 지켜온 우리의 고유 명절 추석과 비슷한 시기이다. 초막절 행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집 밖에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일주일을 지내는 것이다. 초막은 불완전하고 불편한 임시거처다. 왜 성경은 풍성하고 즐거운 추수감사절에 초라한 초막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담겨 있다.

첫째로, 이스라엘은 출애굽 한 이후 가나안 땅에 입국하기 전까지 약 40년간 초막에서 지냈기 때문이다(레 23:43).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초막으로 나아가 출애굽 시절의 삶을 재연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풍요로운 삶을 어려웠던 과거에 비춰 돌아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과거 초막에서 지냈던 때를 기준으로 오늘을 조명해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라는 뜻이다.

둘째로, 초막은 불편한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가 뒤따랐다. 매일 아침 만나가 내렸고 때로는 메추라기가 몰려오기도 했다. 하나님은 반석을 쳐 물이 나오게 하셨고 옷과 신발은 해어지지 않았으며 외적의 침입도 막아주셨다. 인간이 극소화됐던 그 시절 하나님은 극대화되신 것이다. 인간의 능력이 한계점에 부닥친 그곳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시는 전능을 보이셨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그런 하나님의 우선순위는 인간의 노력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힘이 생활을 위한 절대적 자리를 차지하면서 하나님은 부수적인 장식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인간이 극대화되고 하나님이 극소화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기도의 부재이다. 더 이상 기도할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막절에 초막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는 옛 초막으로 돌아가 잃어버린 기도의 골방을 되찾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가야 할 초막은 미래의 꿈과 소망이 있었던 곳이다. 광야에서 지냈던 그 시절에는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과 꿈으로 가득 찼다. 해가 지고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밤이 되면 아버지는 자녀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 하늘의 별들을 세면서 그 옛날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자손 번성의 말씀을 들려줬을 것이다(창 15:5).

당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방랑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여정에 있었다.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그래서 꿈과 소망이 있다는 것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꿈꿔 왔던 가나안에 입국해 풍성하고 안정된 삶을 얻었다. 그러나 그러한 풍요와 안정은 오히려 꿈을 상실한 채 현실에 안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 여기가 좋다는 생각이 그들을 지배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미래의 비전을 향하여 나아갈 동력을 잃어버렸다. 그런 그들에게 초막으로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곧 그 옛날 초막생활 때 소유했던 미래의 꿈을 되찾으라는 뜻이다. 추수감사절은 옛 초막으로 나아가 새로운 내일의 꿈을 말씀 속에서 되찾는 거룩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난 130년 동안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가난과 독재라는 질곡의 시간을 보내면서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세속화 물결에 휩싸여 감사와 기도, 미래 비전을 놓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이 초막절마다 그러했듯이 우리 모두가 초막으로 나아가 본질적 감사를 회복하며 잃어버린 기도의 자리를 되찾아 하나님께 삶의 우선순위를 돌려 드리는 영적 회복이 있기를 기도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미래의 꿈을 되찾는 일이다. 해방과 분단 70주년인 2015년은 우리 민족 모두가 한반도 평화통일의 비전을 공유하는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되어야 할 것이다.

권혁승 (서울신대 교수·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