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저 정현이에요. 1년 동안 우리 가정에 평화를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정말 행복하답니다.”
서울 성북구 안암로 대광초등학교 3학년 신정현(9)군은 지난 5일 작은 엽서에 글씨를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올 한 해 하나님께 감사했던 내용들로 엽서는 금세 채워졌다. 신군은 엽서 곳곳에 알록달록한 색깔로 비둘기 토끼 강아지 나무 등도 그려 넣었다. 장난기 가득한 신군 얼굴이 감사 내용을 떠올릴 땐 제법 진지했다.
대광초등학교는 매년 11월 첫째 주 목요일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린다. 신군을 비롯해 이 학교 학생 496명은 이날 감사편지를 쓴 뒤 강당에 모였다. 1학년 학생 99명은 한 명씩 강대상 앞으로 나가 집에서 준비해 온 과일바구니를 하나님께 드렸다. 바구니엔 바나나 귤 사과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1학년 학생들이 추수감사예배 때 과일바구니를 준비하는 건 이 학교의 오랜 전통이다. 교사 정은주씨는 “학교에 입학한 뒤 첫 1년을 잘 보살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2∼6학년 학생들은 과일바구니 대신 헌금을 드린다. 학교는 이렇게 걷힌 헌금을 매년 월드비전에 후원한다. 대광고등학교 교목 김충렬 목사는 설교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학생들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튿날 5학년 학생 74명은 추수감사예배에서 걷힌 사과상자 27개 분량의 과일을 들고 경기도 하남 영락노인복지센터를 찾았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과일을 전달하기 위해 대광초 학생들은 1996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복지센터를 방문하고 있다. 복지센터는 영락교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복지시설로 학교에서 이곳까지는 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학생들은 야외무대에서 노인들을 위한 특별 행사도 가졌다.
“서툰 솜씨지만 예쁘고 귀엽게 봐주세요. 익숙한 곡은 따라 부르시거나 손뼉을 치시면서 같이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백서연(11)양의 소개로 학생들의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공연이 이어졌다. 조연주(11)양은 발레를 했다. 학생들은 특별무대를 위해 한 달간 구슬땀을 흘렸다. 무대 뒤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복지센터 노인 30여명은 휠체어에 앉아 아이들의 공연을 보며 기뻐했다. 이날 기온은 18도 정도로 쌀쌀한 편은 아니었지만 복지센터 직원들은 어르신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흰색 털모자에 마스크를 씌워 드렸다. 주름이 깊게 파인 손으로 열심히 박수를 치던 한 할머니는 감동을 받았는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박순봉(86) 할머니는 공연을 마치고 퇴장하는 아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줬다.
공연을 마친 아이들은 복지센터 2층 노인생활관으로 올라갔다. 거동이 불편해 야외무대에 나오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5학년 김재하(11)군은 장청미(73) 할머니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흥얼거리던 할머니는 연주가 끝나자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막내 손주 같은 아이들이 악기 연주를 해주니까 너무 좋네. 자주자주 오렴.”
일부 아이들은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차를 타서 드렸고, 어떤 학생들은 어르신들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할머니의 손을 꼭 붙들고 눈물을 흘리는 학생도 있었다. 김명식(88) 할머니는 아이들을 보며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렸다. “고맙다. 사랑한다.”
아이들은 과일 바구니 외에도 각자 용돈을 아껴 어르신들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했다. 선물 봉투 안으로 담요 수면양말 등이 보였다. 학교에선 물티슈 등을 선물로 준비했고 학부모들은 로션 등을 전달했다. 이영임 대광초 교장은 “이런 활동을 통해서 학생들이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모습을 배우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권기용 영락노인복지센터 원장은 “공연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웃는 모습 자체가 어르신들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하남=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추수감사절] 사랑의 고사리손 대견했다… 서울 대광초등생들의 감사와 나눔 행사
입력 2015-11-13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