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난방카드制 도입해도… 에너지 빈곤층은 ‘추운 겨울’

입력 2015-11-12 04:22
A씨(79·여)는 겨울이 두렵다고 했다. 그가 사는 서울 영등포구의 9.9㎡(약 3평) 쪽방은 지하라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전기장판이 있지만 전기요금 부담에 웬만하면 꺼둔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월 40만원가량 받는데 방 임대료와 전기·수도료 등 공과금을 내고 나면 20만원 정도만 남는다. 이 돈으로 약값과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겨울이면 최대한 옷을 껴입고 떨면서 버티기 일쑤다.

A씨 같은 이들은 ‘에너지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보건사회연구원은 158만4000가구, 시민단체인 에너지시민연대는 178만 가구 정도가 에너지 빈곤층이라고 추산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에너지 빈곤층 지원을 위해 ‘난방카드(에너지바우처)’ 제도를 도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다. 정부는 ‘에너지 복지’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지원 기준이 너무 까다롭고 지원액도 작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생색내기’라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등은 올해 난방카드 사업에 예산 1058억원을 책정했다고 11일 밝혔다. 내년 1월 말까지 읍·면·동사무소에 신청해 에너지 빈곤층으로 인정되면 가구원 수에 따라 1인 가구에 8만1000원, 2인 가구에 10만2000원, 3인 이상 가구에 11만4000원을 딱 한 차례 지급한다.

지원금을 받으려면 전자카드와 가상카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전자카드는 복지부가 제공하는 ‘국민행복카드’로 지급된다. 체크카드처럼 에너지 관련 비용(전기료 등)을 결제할 수 있다. 가상카드는 고지서 등에 찍히는 난방비 요금을 미리 차감해 에너지 공급사에 주는 방식이다. 각 카드는 다음 달부터 내년 3월 말까지 쓸 수 있다.

그런데 지급 대상을 선정하는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일부만 지원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한 탓이다. 산업부는 지원 대상을 70만 가구로 정했다. 실제 에너지 빈곤층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의료급여 수급 가구이면서 노인(만 65세 이상) 영·유아(만 6세 미만) 또는 장애인(1∼6급 등록자)이 포함된 가구여야만 난방카드를 신청할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중 주거·교육 급여를 받으면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양의무자가 있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한 이들도 자연스럽게 제외됐다. 경북 영천에 사는 B씨(83·여)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자녀를 5명이나 뒀지만 왕래가 끊긴 지 오래다. 집에 보일러조차 없어 난방을 할 수 없다. B씨는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해 생계가 막막하고 난방비도 받지 못한다.

여기에다 난방이 필요한 4개월(12∼3월) 동안 쓰기에는 8만∼11만원 수준의 난방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기초생활수급자는 “추위 걱정을 안 하려면 한 달 난방비로 5만∼10만원은 들어갈 텐데, 이를 감안하면 너무 적다”고 했다.

도시와 시골 등 지역마다 다른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농촌은 카드 사용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불편할 수밖에 없다. 홍혜란 에너지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상당한 혼란이 우려된다”며 “첫발을 뗀 만큼 수급기준을 완화하고 제도를 확대해 사각지대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