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문화 확산, 법·정책 재정비가 답이다] CC 등록이 신뢰 보증… NPO들 줄서서 가입

입력 2015-11-11 20:58
케네스 디블 자선사업감독위원회(CC) 법률서비스국장이 지난달 6일 영국 런던 핌리코의 사무실에서 정부의 비영리조직(NPO) 지원방안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지난달 3일 런던 자선지원재단(CAF) 사무소에서 영국 정부의 NPO 정책을 설명하는 제인 아노트 CAF 국제이사.

기부와 자원봉사 참여가 활발한 영국에선 정부가 NPO(비영리조직) 규제기관과 중간지원조직을 지원해 나눔 문화 확산을 돕는다.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의 NPO 민간 관리·규제기관인 자선사업감독위원회(CC·Charity Commission)와 자선지원재단(CAF·Charities Aid Foundation)이 대표적이다. 두 기관 모두 정부가 기부를 장려하기 위해 설립했다가 민간기구로 독립시킨 이력이 있다.

◇비영리 통합 관리 허브, 자선사업감독위=1853년 설립된 CC는 정부 지원을 받는 민간단체로 현재 16만4000여개 이상의 NPO를 관리하고 있다. 자산 규모가 5000파운드(약 875만원) 이상인 NPO라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CC에 소속되면 모금 권한을 부여받고 세금 혜택도 받을 수 있어 대부분의 NPO가 자발적으로 등록을 신청한다.

지난달 6일 런던 핌리코의 사무실에서 만난 케네스 디블 법률서비스국장은 “매년 5000∼7000곳의 NPO가 등록 신청을 하는데 올해는 7192곳의 신청을 받아 4648개 단체의 등록을 승인했다”며 “대중에게 ‘CC 등록 단체는 믿을 만한 곳’이란 인식이 강해 비교적 엄격한 규제에도 NPO들이 등록을 선호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CC는 소속 단체의 역량강화, 보조금 지원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지만 특히 회계투명성 제고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자산 규모가 연간 1만 파운드(약 1750만원) 이하인 단체에는 약식 자료를 요구하지만 이를 초과하는 단체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보고서를 매년 요구한다. 제출된 자료는 CC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데 돈 세탁, 테러단체와의 연계 등 부적절한 행위가 발견되면 자산 회수나 금융계좌 동결과 같은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영국 정부가 ‘세금 혜택·모금 자격 부여’란 당근과 ‘규제·관리’란 채찍을 동시에 구사하며 NPO에 공을 들이는 건 그만큼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시민들의 대가 없는 기부와 봉사가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디블 국장은 “영국 정부는 제3섹터(비영리부문)에 호의적이며 NPO를 ‘주요 정책 파트너’로 생각한다”며 “해양 인명구조 자선단체 ‘로열 내셔널 라이프보츠 인스티튜트(RNLI)’나 호스피스 단체 등 정부가 시민에게 제공해야 할 사회서비스를 NPO가 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C처럼 단일 조직이 제3섹터 전체를 감독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디블 국장은 “영국은 400여년 동안 자선단체를 관리하며 종교 인권 교육 등 제3섹터를 하나로 묶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경험했다”며 “시민들이 제3섹터의 중요성을 인식해 적극 기부하길 원한다면 고려해볼 만한 형태”라고 소개했다.

◇NPO 정책의 조언자, 자선지원재단=1924년 국가사회서비스위원회(NCSS)로 설립된 CAF는 74년 제3섹터 민간연구단체로 독립했다. CC가 NPO 감독·규제기관이라면 CAF는 NPO의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는 ‘징검다리’이자 정책 조언자 역할을 한다. 전 세계 기부 트렌드 연구와 기부문화 촉진을 위한 정책 제안이 주된 업무로 매년 11월쯤 세계기부지수도 발표한다.

지난달 3일 CAF의 런던 사무소에서 만난 제인 아노트 국제이사는 기부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펼치는 정책의 사례로 ‘기프트 에이드(Gift Aid)’를 들었다. 90년 도입된 기프트 에이드는 납세자가 기부금으로 감면받은 금액을 다시 NPO에 기부토록 유도하는 제도다. 이 제도로 영국 정부가 25년간 조성한 금액은 123억 파운드(약 21조5000억원)에 달한다.

아노트 이사는 “최근 우리가 진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기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2% 더 많이 기부했고 기부 참여율도 21% 더 높았다”며 “정부가 나눔 문화 확산을 바란다면 우선적으로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기부에 장벽이 되는 복잡한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정부만의 노력으로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아노트 이사는 “NPO도 스스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기부자 및 시민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이 모일 때 비로소 나눔 문화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런던=글·사진 양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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