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출생 비밀 가진 소년 통해 인간의 고립과 상실 그려

입력 2015-11-12 18:29

이름은 인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약속된 기호다. 누군가로부터 매일 호명돼 자신의 이미지로 규정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려졌던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제 이름을 짓기도 한다.

신중선 작가가 네 번째 장편 ‘네가 누구인지 말해’(문이당)를 냈다. 2007년 ‘돈워리 마미’ 이후 8년 만에 낸 이 소설은 이름을 화두 삼아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오가는 독창적인 서사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자칭 ‘몽상가 물고기’라는 18세 남자. 본디 제 이름을 모른다. 아기 바구니에 담겨 보육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 불렸던 이름, 입양한 부모가 지어준 이름, 양부모집을 뛰쳐나온 뒤 알게 된 아저씨가 지어준 이름…. 이름은 많지만 어느 것도 제 게 아닌 것이다. 그래서 아예 ‘몽상가 물고기’라는 열대어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였다. 얼핏 낭만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 물고기는 독침이 두 개가 있으니 이 작명은 끊임없이 운명에 배반당하는 그가 세상을 향해 뿜어내는 독기 같은 것이기도 하다.

38세의 여성 만화가 페이. 영화의 등장인물 이름을 필명으로 쓰는 이 여자는 21년 전의 기억을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안고 살아간다. 그녀에게는 분신처럼 사랑한 쌍둥이 자매가 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 같은 사건이 터지며 여동생은 집을 나갔다. 그녀는 지금도 해외까지 찾아가는 열성을 보이며 동생을 찾아 헤매고 있다.

또 하나의 인물이 있다. 사설탐정 B. 젊은 시절 흥신소에서 일했고 지금은 일용직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자신이 과거 셜록 홈즈라도 됐던 것처럼 생각한다. 탐정 B로 불릴 뿐 그의 실제 이름을 아는 이는 없다. 어느 날 그의 집 수도꼭지에서 누수 현상이 생기는데, 거기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모르스 부호처럼 야릇한 신호를 보낸다. ‘여보세요’ ‘도와주세요.’

어느 날, 숲 속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 몽상가 물고기와 만화가 페이. 둘은 처음 만나는데도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소년은 출생의 비밀을 찾아 자신이 버려졌다는 숲으로 찾아온 것인데….

스스로 붙인 이름으로 살아가는 세 캐릭터가 빚어내는 이야기의 변주는 자못 흥미롭다. 탐정까지 등장시켰으니 소년의 출생 비밀을 밝혀줄 법 한데, 작가는 그런 독자의 기대를 배반한다. 소년은 끝내 제 이름 찾기에 실패하고 벼랑 끝의 선택을 한다. 신 작가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다.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야 하는 소년의 캐릭터를 빌려 인간의 고립과 상실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