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獨·佛, 지구는 미국에… 작아지는 ‘캐머런의 소영제국’

입력 2015-11-11 21:41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이 각종 국제 현안에서 점점 손을 떼고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유엔 상임이사국이지만 국방·외교 예산을 크게 줄이면서 우크라이나 사태, 이슬람국가(IS) 대응 등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요구하는 국제 공조에 시늉만 하고 있다. 눈앞의 경제적 이득만을 노린 중국에 대한 도 넘는 구애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내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까지 다가오면서 국제사회에서 영국의 행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2일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영국 외무부 예산은 25% 줄었다. 게다가 영국 정부는 앞으로 25∼40%를 더 줄일 방침이다. 2010년 현재 10만2000명의 현역 군인 수도 2020년엔 8만2000명으로 감축된다.

영국은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위기 대응도 독일과 프랑스에 일임한 모양새다. 중동·아프리카에서 몰려든 난민 수용과 관련, ‘국가별 할당’에도 반대해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다.

이런 추세는 2010년 집권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 들어 본격화됐지만 행정부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2013년 10월 영국 하원은 화학무기 사용이 확인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에 대한 군사개입 동의안을 부결시켜 대외 군사개입 전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여론도 대외 개입에 부정적이다. 올해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회원국이 침략을 받았을 경우 군사 개입에 찬성하는 영국인은 50%를 밑돌았다.

국제 현안에 대한 관여를 크게 줄인 가운데 영국 정부의 관심은 근시안적인 경제적 이익에 쏠리고 있다. 캐머런 총리가 지난달 영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인권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은 채 극진히 대접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7월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방문에서도 투자와 무역협상에 열을 올렸을 뿐 역내 및 글로벌 안보현안에는 무관심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러한 영국의 ‘후퇴’는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정부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전 참전에 대한 피로감, 경제침체, 캐머런 총리 자신의 대외 정책 무관심 등이 겹쳤다는 분석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관련, EU 탈퇴론자들은 영국 수출의 60%가 비(非)EU 지역으로 가고, 안보 불안은 나토 잔류를 통해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이에 대해 격월간 외교전문 포린어페어스 최신호에 ‘작아지는 영국(littler UK)’이란 에세이를 실은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대학의 아난드 메논 교수는 “EU 잔류를 통한 연대의 이득이 훨씬 클 것”이라면서 “한 예로 미국과 EU가 추진 중인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은 경제뿐 아니라 중대한 지정학적 이득이 발생할 텐데 영국의 탈퇴는 이런 기회를 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