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정치행위이자 역사의 기록이다. 그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야 할 말의 위계가 분명해야 한다. 여론 주도와 정치적 의제 선점 욕구가 꿈틀거려도 더러는 말을 삼가야 한다. 대한민국처럼 제왕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제 아래서는 더욱 그렇다.
역대 대통령의 특색 있는 말본새가 얘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단문을 구사해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억센 사투리에 말실수가 많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받아 적으면 문장이 된다고 할 만큼 논리정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나친 다변에 격정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구설에 자주 올랐고 말 때문에 탄핵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당 대표 시절 말을 아낀 편이었다.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간혹 받았지만 신뢰감이 있다는 찬사가 더 많았던 듯하다. 대통령이 된 후 초기에는 정감 있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중소·중견기업의 애로를 빗댄 ‘손톱 밑 가시’ ‘신발 속 돌멩이’ 같은 표현에는 약자를 아끼는 배려가 읽혔다.
자신감 때문인지, 초초해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서 격해졌다.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 ‘한번 물면 살점이 뜯어져나갈 때까지 안 놓는 진돗개’ ‘단두대에 올려 처리할 규제들’ 등 섬뜩한 단어들이 등장했다. 작년 11월 나는 박 대통령이 더 이상 거친 말을 하지 않기를 당부하는 글을 이 난에 썼다. 1년이 지나는 동안 대통령의 말은 별로 정제되지 않았다.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는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검인정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의 정신이 이상해졌단 말인가’라고도 들린다. 안타까움을 드러냈다기엔 너무 극단적이다. 한쪽을 버리면서 다른 쪽을 얻겠다는 대통령의 이른바 ‘작심발언’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대상이다. 자주 할수록 말발이 안 먹힌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대통령의 말2
입력 2015-11-11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