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08년 10월부터 2009년 9월까지 돼지 세 마리를 키우고 도축장에 출하해서 고기로 먹기까지 일 년 동안 기록한 르포르타주다.”
저자 우치자와 쥰코(48)는 일본의 여성 르포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세계 각지의 도축현장을 취재해 ‘세계도축기행’ 같은 책을 쓰기도 했다. 가축과 축산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돼지를 길러보자는 다소 엉뚱한 구상으로 이어졌고, 결국 치바현의 폐가를 빌려 혼자 숙식을 하면서 돼지 키우기를 시작한다. 주목할 점은 쥰코의 이 이상한 실험이 돼지 키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도축과 시식까지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책을 쓰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질문들이 먼저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저자는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실험에 몰두한다. 어떤 종을 키울지, 분뇨처리를 어떻게 할지, 돼지우리는 또 어떻게 지을지 고심한다. 저자의 일과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흔히 먹는 돼지의 생태와 축산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된다.
“원래는 잔반과 밭에서 못쓰게 된 채소를 처리하는 가축으로 쉽게 기를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삼엄하게 격리된 공간에서 남모르게 키워지는 동물이 되어, 살아있는 돼지를 만지기는커녕 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저자는 돼지를 키우고 도축하고 요리하는 과정을 시종일관 유쾌한 문체로 그려간다. ‘유메’ ‘히데’ ‘신’이라고 이름을 붙인 세 마리 돼지는 여성작가와 함께 하루하루 소동이라고 할만한 사건들을 겪으며 성장해 나간다. 작가는 교배, 분만, 거세, 도축, 해체 등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을 글과 그림으로 공들여 묘사하고 축산농가와 축산시장을 두루 보여준다.
책을 읽다보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 돼지를 키우다 보면 감정이입이 될 법도 한데 저자가 감정에 대한 묘사를 매우 절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매일 돼지를 돌보고 있으면, 아니 키우기 시작한 그날부터 돼지들이 미치도록 귀여웠다”고 말하면서도 “돼지를 먹으려고 죽인다는 데에 망설임은 없다” “너희를 맛있게 먹을 거야” 같은 말들을 스스럼없이 늘어놓는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보이는 이 기묘한 태도야말로 이 책을 다른 책들과 구별해주는 특징이자, 이 책의 탁월함이라는 걸 알게 된다. 기존에 동물이나 육식을 다룬 책들은 동물의 고통이나 권리, 또는 육식의 윤리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이 책은 육식에 대한 제3의 관점이라고 할만한 새로운 사유로 이끈다.
“십 수 년 동안 도축되는 가축들을 바라보면서 불쌍하다는 말을 내 스스로 금기시해왔다. 윤리를 논하기 이전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먹으며 생존하도록 만들어진 이상 그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전제라고 생각해왔다.”
저자는 육식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육식을 끊고 대신 먹을 다른 생명체를 선택한다 해도 무엇인가를 죽인다는 것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어디에 경계선을 둘 것인가는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그것에는 정의도 선악도 진리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육식을 옹호하는가? 어쩌면 그렇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간다. 육식을 둘러싼 인간의 죄책감에 대해서 그녀는 “어떻게 해도 그 죄책감을 없앨 순 없다”면서 새로운 관점을 모색한다.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소스와 유자즙을 살짝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씹는 순간 육즙과 지방이 입안에 퍼졌다.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한 지방의 맛이 입에서 몸 전체로 전해졌을 때, 가슴에 코를 비비며 어리광을 부리던 세 마리가 내 안에서 되살아났다. 그들과 뒤엉켜 장난을 쳤을 때의 달콤한 기분이 그대로 몸속으로 스며들어왔다. 돌아와 주었구나!”
키운 돼지들을 죽여서 고기로 먹는 순간을 기록한 페이지는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이다. 저자는 그 순간 돼지들이 돌아왔다는 느낌,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한 번도 예상치 못했던 “기묘한 감각”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귀여워하면서 키우고, 내가 죽이고, 내가 먹은 세 마리. 그 세 마리가 죽어서도, 소화가 된 후에도, 그리고 배설된 후에도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믿음. 나는 이것을 토대로 육식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될 것이다.”
키우고, 죽이고, 먹고, 고마워하고, 기억하면서 인간과 가축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일까. 저자가 돼지들과 1년을 보내면서 도달한 생각은 가축들에 대한 고마움이나 경건함 같은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육식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관점을 여기저기서 비치면서도 명료하게 정리해서 제시하진 않는다. 가축과 인간의 기묘한 운명을 긍정하고 또 슬퍼하면서, 때론 비극적으로 때론 희극적으로,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내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유를 자극한다.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키우고 죽이고 먹고… 인간과 가축의 기묘한 운명 이야기
입력 2015-11-12 18:47 수정 2015-11-12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