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육제도 안에서 학력을 인정받는 학교가 되려면 건물과 운동장이 학교 소유여야 한다. 가난하게 시작했던 여명학교는 정식 인가를 받지 못해 탈북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쳐서 학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탈북 학생들도 학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남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검정고시 합격을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선생님 수학 문제도 아닌데 여기서 왜 거리가 나와요?”라고 묻기에 문제를 살펴봤다. ‘다음 중 본문의 내용과 거리가 먼 것은?’이라는 국어 문제였다. 문제 방식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무작정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한 탈북 학생들은 여명학교를 ‘말이 통하는 검정고시 학원’ 정도로 여겼고 검정고시에 합격만 하면 학교를 그만뒀다. 여명학교가 껍데기만 남한 방식인 학생들을 키워내는 형국이었다.
나는 다시 교육제도를 면밀히 검토했다. 그리고 탈북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학교를 대안학교로 운영하되 검정고시 부담을 없애야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해 반드시 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곧장 가용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정부에 탄원과 민원을 하기 시작했고 성도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로부터 “브리핑 기회를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브리핑을 진행한 뒤 한 달여 만에 ‘대안학교 설립 운영규정 개정’이라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여명학교뿐 아니라 탈북민과 다문화 가정 자녀, 학교 이탈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는 임대 상태에서도 학력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됐고 우리는 임대 상태의 학교로는 처음으로 2010년 3월 학력 인가를 받았다. 개교 후 6년여 동안 이어온 노력의 결실이었다. 나는 선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결국 이뤄주신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2012년 2월 어느 날 한 여명학교 졸업생이 전화를 했다. “지난밤에 누나가 탈북하다 잡혔습니다. 김정일 사망 애도 100일 내에 탈북한 사람들은 그 가정까지 처벌한다는데 제발 좀 도와주세요.”
자칫 잘못하다간 오히려 가족들의 신원이 공개돼 더 힘들 수 있으니 기도하며 기다리라고 다독였다. 그런데 이튿날부터 이 일이 정치적 이슈가 됐다. 화가 난 졸업생은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 힘든데 왜 가만히 계세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고난을 이용하잖아요”라며 울었다. 힘없는 탈북 형제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적인 힘에 의지했고 나중에는 그 힘에 휘둘리는 것이었다.
밤새 기도하고 고민한 끝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당장 기도의 동역자가 필요했다. 평소 여명학교를 돕던 배우 차인표씨에게 기도해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탈북자들의 현실을 담은 영화 ‘크로싱’의 주인공이었던 차씨는 내 문자를 보고 바로 전화했다.
“어떻게 그 어려운 일에 혼자 나서려고 하느냐. 함께 하자”며 그는 다른 연예인들과 함께 중국 대사관 앞에서 펼치는 ‘탈북자 북송반대 캠페인’에 동참했다. 우리는 전 세계 국민들에게 탈북자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중국 정부도 이들을 돌려보내지 말라고 호소했다. 이 일이 불씨가 되어 세계 각국에서 캠페인이 벌어졌다.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듬해 라오스에서 북송된 탈북 청소년들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전 세계에서 즉각적으로 성명을 내어 북한이 함부로 이들을 처결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이 작은 공동체도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여명학교를 통해 통일의 길목에서 많은 기적을 허락하신다는 것도 깨달았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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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11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