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병원에서 환자의 피를 뽑아 일정 과정(일명 정화)을 거친 후 혈액을 몸속으로 되돌려 보내는 이른바 '혈액정화요법'이 버젓이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 시술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 시술이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혈액정화요법 치료비는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에 달한다. 본지 취재 결과 환자들은 이 치료에 드는 비용이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노화방지, 뇌졸중 예방 등에 효과가 좋다는 말에 현혹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혈액정화요법 시술을 받아 효과를 받았다는 김미자(가명·52)씨의 경험을 통해 해당 치료 과정을 확인했다. 지난 2014년 4월 집에서 청소를 하다 갑자기 쓰러진 김씨. 그는 응급실에 남편과 함께 들렀다고 했다. 혼수 상태였던 김씨는 뇌졸중이 의심돼 급히 응급실에서 CT와 MRI 촬영을 했는데 별다른 이상 증세가 발견되지 않았다. 김씨는 “응급실에서 몇 시간 지나 증상이 호전이 됐고 별다른 이상 증세가 없어 귀가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물 밑에 가라앉는 기분처럼 머리가 멍했다”며 “이러한 증세를 고쳐보고자 혈액순환제나 오메가3를 먹어도 호전이 없었다. 이후 혈액정화요법에 대해 알게 됐고 병원에 들러 약 4시간에 거쳐 피를 뽑아 혈액을 정화하는 시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시술 과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취재 결과, 이 병원은 환자의 팔이나 대퇴부, 목에 2개의 주사를 꼽고 주사 2개를 이용해 시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의 주사에서는 탁한 혈액을 혈액 정화기로 보내고, 나머지 하나의 주사를 통해 정화된 혈액을 다시 몸속으로 되돌려 보내는 방식이다. 시술 시간은 약 4시간 정도다. 김씨는 “목에 관을 삽입하고 투석기를 이용해 약 4∼5시간에 거쳐 피를 뽑아 정화시킨 뒤, 다시 정화시킨 맑은 피를 내 몸에 넣는 시술을 받았다”며 “시술을 받은 후 머리가 멍해진 게 나아진 듯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작년과 올해 두 번 해당 병원에서 혈액정화요법을 받았고, 시술 비용 약 400만원을 지불했다. 그는 시술 효과가 좋다고 여겨져, 주변에도 시술을 권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콩팥 기능이 좋지 않은 신장 투석환자들에게 쓰이는 시술이 일반인들에게도 나쁠 이유가 없지 않겠냐”며 “일각에선 위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왜 위험한 시술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실제 부산 A병원에서는 이 혈액정화요법을 혈액 속에 있는 콜레스테롤, 동맥경화 유발물질, 노화물질, 각종 바이러스, 중금속 등 해로운 노폐물을 걸러내는 요법이라고 정의했다. 혈액정화요법을 통해 개선될 수 있는 질환도 다양하다고 밝히고 있다. 뇌졸중 치료 및 예방, 심근경색 치료, 혈관성 치매, 천식과 아토피 개선, 발기부전 개선, 뇌졸중, 시력과 망막 질환 개선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병원은 혈액정화요법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노화 및 식생활 영향으로 혈액에 노폐물이 쌓이게 되면 혈액이 탁해지고 끈끈해져 우리 몸 미세혈관까지 혈액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어렵게 된다. 혈액을 맑게 하여 뇌졸중, 관상동맥질환을 개선하게 하는 것이 이 요법”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 병원 뿐 아니라 서울,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1회당 200∼500만원하는 고가의 검증되지 않은 혈액정화요법을 버젓이 시행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혈액정화요법은 왜 위험할까? 한 신장내과 전문의는 “혈액 투석은 콩팥 기능이 원활하지 못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술이다. 건강한 사람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검증되지 않은 시술”이라며 “피를 걸러내서 외부로 보내고 다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의료진은 “혈액이 다시 주입되는 과정에서 이물질이 통과할 수 있고 혈소판, 혈구 세포들이 깨지면서 각종 감염 및 부작용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건강한 콩팥을 가진 사람이 외부에서 피를 걸러내어 다시 피를 주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이유도 없고, 혈액정화요법이 뇌졸중 등 각종 질병에 좋다는 의학적 근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혈액정화요법 시술은 합법적인 의료행위 일까? 이에 대해 노환규 전(前) 대한의사협회장은 “의료법에 위배되지는 않으나 의료 윤리에 위배될 수 있다. 의사들이 수익을 위해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시술을 감행할 경우 결국 피해는 환자 몫이 된다”며 “변호사에게도 윤리에 저촉되는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징계권이 있듯이, 의료계 내부에서도 자체적으로 기구를 만들어 윤리에 위반되는 행위를 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징계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노 전 회장은 “의사들이 저수가로 인해 ‘돈 되는 시술’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저수가 문제를 해결하고,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특정 질환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해 병원이 치료행위를 하게 될 경우, 건강보험 급여 청구가 가능하다. 문제는 이 병원들이 하는 의료행위가 의학적 검증이 되지 않은 임의비급여 행위라는 점에서 불법 소지가 있다. 현재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장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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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의 동행] “새 피로 바꾸면 몸에 좋습니다”… 일부병원 무분별 ‘혈액정화요법’ 기승
입력 2015-11-15 18:28 수정 2015-11-16 1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