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화를 이끈 아웅산 수치(70) 여사가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압승으로 마무리될 총선 이후 대통령이 되지 못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국정을 좌우하는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치 여사는 10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과 인터뷰에서 외국인 자녀(영국인)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의견을 묻자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a rose by another name would smell as sweet)”이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대사를 인용해 화답했다. 대통령 직함을 갖지 않더라도 대통령처럼 국가 권력의 정점에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다.
NLD의 단독 집권이 유력해지면서 내년 2월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도 주목된다. 수치 여사가 대통령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NLD 내부에서는 군 최고사령관 출신인 틴 우(88) 부의장과 수치 여사의 측근이자 당내 전략가로 꼽히는 윈 흐테인(73) 중앙집행위원 등 2명이 유력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부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해 NLD가 집권하더라도 군부의 영향력이 건재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치인이나 의회 직원 가운데 76%가 군부 관련 인물이며 미얀마 국가 예산의 23%가 국방비라고 전했다.
미얀마란 국가 명칭이 옛날 이름인 ‘버마’로 회귀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1988년 군부 정권에 대항하는 대규모 집회(8888운동)를 무력 진압하고 집권한 신군부는 이듬해 버마란 국명이 식민지 시대 잔재라는 이유로 미얀마로 바꿨다. 그러나 수치 여사 등 민주화 운동가들은 미얀마라는 명칭을 거부해 왔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들도 ‘버마’란 명칭을 사용해 왔다.
개표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NLD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속임수를 쓰기 위해’ 고의로 총선 결과 발표를 지연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NLD는 이날 전체 14개주 가운데 4개주의 상·하원 의석 164석 중 154석(93.9%)을 이미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얀마 선관위는 이날 오전까지 결과가 나온 하원 54개 의석 중 NLD가 49개 의석을 차지했다고만 밝혔다.
반세기 동안의 군부독재를 벗어나 민주화로 들어서는 미얀마의 정치적 변화를 두고 세계 2강(G2)인 미·중 간에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적국이었던 미얀마와 2012년 국교를 정상화하며 미얀마의 개혁·개방을 유도해온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미얀마의 변화를 환영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선거 과정은 고무적이며 버마의 민주 개혁과정에서 중요한 걸음을 상징한다”고 논평했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같은 날 “중국은 미얀마의 선거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최근 잇따른 민주화 인사 탄압으로 논란을 빚은 중국으로서는 미얀마의 ‘민주화 바람’이 중국에 영향을 미칠까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달리 불러도 장미는 향기로울 것”… 권력의지 드러낸 수치
입력 2015-11-10 21:16 수정 2015-11-10 2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