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운업계 구조조정 골든타임 놓쳐선 안 된다

입력 2015-11-10 18:49
해운산업 구조조정 방안이 혼선을 빚고 있다. 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른바 ‘청와대 서별관 회의’로 불리는 구조조정 차관회의를 가동키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온갖 시나리오들이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이 10일 기자실을 찾아 ‘기업 구조조정 관련 언론보도 협조요청’이란 보도자료를 내고 추측성 기사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도 “자발적 합병을 권유하거나 강제 합병을 추진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역시 ‘합병 불가’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의 공식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믿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양사의 재정 상태나 업황 등을 볼 때 강도 높은 조치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계가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양사의 누적 적자는 수천억원대에 이른다. 채권단이 추가 지원을 끊으면 사실상 정상 경영이 어려운 상태다. 규모의 경제를 내세우는 세계 해운업계 동향을 볼 때 장기적인 업종 전망이 결코 밝지 않다는 점도 강제 구조조정 말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해당 기업들의 자구노력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정부 개입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물론 최선의 방안은 양사가 자율적으로 빅딜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삼성이 화학 계열사를 한화와 롯데에 매각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 다음 수순은 채권단과 기업이 협약을 통해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그러나 양사의 경우 자율적으로 처리하기에는 여건이 너무 취약하다. 한계기업에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해운업을 비롯한 조선, 건설, 철강, 석유화학 업종의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정부도 이 점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한계기업 구조조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우리 경제는 대내외의 숱한 암초에 둘러싸여 있다. 가계 빚은 1100조원을 넘어섰고,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 수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이 늘어났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정부의 선제적인 구조조정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 시장의 실패를 걱정하며 한걸음 물러서 있을 시점이 아니다. 정부가 소극적이다보니 ‘깜깜이 구조조정’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작금의 구조조정은 단순히 몇몇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 차원이 아니다. 산업 지도 전반을 새로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유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