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으로 갔다. 갈대밭은 이맘때 여행지로 으뜸이다. 순천만은 갯벌이 653만평으로 드넓은 ‘개평선’을 펼쳐놓는다. 이 가운데 갈대밭은 163만평으로 순천시 도사동과 해룡면·별량면에 걸쳐 있다. 갯벌과 부드러운 곡선의 물길이 갈대밭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을 풀어놓는다. 국제적으로 보존하면서 현명하게 이용하자고 협약한 람사르 습지로 지정돼 있다. 어디보다 귀한 갯벌이고 아름다운 갈대밭이다.
먼저 순천만 자연생태관으로 들어가 보자. 순천만의 실시간 영상을 모니터를 통해 만난다. 순천만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전시실도 알차다. 천문대에서 망원경을 통해 본 순천만 풍광도 예쁘다. 갈대밭 사이에서 노닐고 있는 새들의 모습도 평화롭다. 최근 찾아온 겨울의 진객인 천연기념물 흑두루미가 논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모습도 관찰된다.
이제 본격 갈대탐방에 나선다. 대대포구로 향한다. 갈대밭 사이로 난 물길을 따라 생태체험선이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물길을 따라 바다로 나가서 갈대와 철새를 보려는 사람들은 태우고 있다. 왕복 30∼40분 정도 걸린다. 물살을 가르는 생태체험선이 갈대와 잘 어우러진다.
포구 선착장 위로 놓인 나무다리를 건넌다. 갈대밭에 놓인 나무데크가 눈앞에 펼쳐진다. 온통 누렇게 채색된 갈대밭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갈대밭 사이로 지그재그 또는 S자 곡선으로 이어지는 데크도 한 풍경을 더 한다. 데크 길에는 여행객들이 줄을 서서 걷고 있다. 평일인데도 인산인해다. 그 사람들의 모습도 아름다운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시선을 어디에 두든 한 편의 그림이 되고 카메라를 어느 방향으로 들이대든 작품사진으로 찍힌다.
나무데크에 올라서면 누렇게 물든 갈대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바람이 어루만질 때마다 갈대는 서로 몸을 부대끼며 감미로운 화음으로 답한다. 사시사철 아무 때라도 좋지만, 솜털처럼 흐드러진 이맘때 더 매혹적인 갈대밭이다.
해가 빠르게 서쪽 산으로 몸을 낮춘다. 용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늘로 승천하려던 용이 순천만의 아름다움에 반해 다시 내려왔다는 곳이다. 이곳 전망대는 순천만의 전망 포인트다. 순천시가 대대포구 갈대밭을 가로질러 용산 전망대까지 산책로를 닦아놓아 접근이 쉬워졌다. 가는 길은 크게 가파르지 않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마음이 급한 사람들을 위한 가파른 길도 있다. ‘다리 아픈 길’이란 이름이 웃음을 짓게 한다.
먼저 보조전망대에 다다른다. 갯벌 사이로 드러난 물길을 따라 생태체험선이 지나는 풍경이 장관이다. 여기서 주전망대까지는 유순한 능선길이다. 주전망대는 사람들로 붐벼 발 디딜 틈이 없다. 저마다 카메라로 풍광을 담거나 ‘셀카’ 찍기에 여념이 없다. 세워놓은 카메라 삼각대만 해도 수십개. 순천만의 대표적인 사진촬영 포인트답다.
그 너머로 순천만의 갯벌과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갯벌을 가로지르는 S자형 물길을 경계로 오른쪽이 대대포구 갈대밭, 왼쪽이 농주리 칠면초 군락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칠면초도 볼만하다. 붉은 칠면초 사이에 누런 갈대섬이 아라비아의 양탄자처럼, 호수에 뜬 개구리밥처럼 펼쳐져 있다. ‘바다의 단풍’위에 수놓아진 ‘자연의 상형문자’다.
1996년 골재 채취 때문에 갈대들이 떠밀려 흩어져 번식하면서 원형 갈대섬을 이루게 됐다. 물가에서 자라는 갈대와 달리 칠면초는 뭍과 갯벌 사이의 염습지에서 자란다. 연안의 질서대로라면 뭍, 갈대 군락, 칠면초 군락이 차례로 이어져야 한다. 칠면초 사이에 갈대섬이 있는 것도 생태계 교란의 증거다.
명아주과의 한해살이 염생식물인 칠면초는 봄에 싹을 틔울 때는 연둣빛이다. 차츰 붉어지다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11월 이후엔 하얗게 말라죽는다. 일곱가지 빛깔로 변한다고 해 칠면초란 이름이 붙었다. 염분을 잘 배출하기 때문에 간척지에 일부러 심기도 한다. 칠면초를 바로 앞에서 보고 싶으면 용산 인근 해룡면 농주리로 가면 된다.
해가 기울자 하늘은 금세 빨갛게 물들었다. 검은색 갯벌도, 그 사이를 흐르는 물길도 붉은 색으로 채색됐다. 갯벌 위에 무리지어 난 칠면초 사이로 흐르는 가느다란 갯골도 빨갛게 흐른다. 저 멀리 바다와 맞닿은 갯벌에는 먹이활동을 끝내고 돌아온 흑두루미가 밤을 지내기 위해 모여 있다. 전 세계에 1만여 마리밖에 없다는 흑두루미 1000여 마리가 겨울마다 찾아드는 철새 도래지다.
지난 9월5일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순천만정원은 순천시 풍덕동 70번지 일원 92만6992㎡ 규모로 2014년 4월 20일 정식 개원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 안에는 567종, 413만 송이의 꽃들이 피고 511종, 83만7000 그루의 나무가 심겨 있다. 순천만정원은 원래 5㎞ 떨어진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을 보존하고자 조성된 곳이다.
이 가운데 순천호수정원은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인 영국의 찰스 젱스가 순천에 머무르면서 직접 디자인했다. 순천의 지형과 물의 흐름을 잘 살려 산과 호수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중심에는 봉화언덕이 있고 난봉언덕, 인제언덕, 해룡언덕, 앵무언덕, 순천만언덕이 둘러싸고 있다. 중심에 있는 봉화언덕이 16m로 가장 높다. 호수는 순천의 도심을 나타내고 호수를 가로지르고 있는 데크는 순천시의 젖줄 동천을 형상화한 것이다.
주변에 베르사유 궁전 정원을 연상시키는 프랑스 정원과 포츠담의 카를 푀르스터 정원을 본뜬 독일정원, 튤립과 풍차가 어우러진 네덜란드 정원, 흑두루미 미로정원도 발길을 잡는다.
순천=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