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학연구원(원장 유정우)은 최근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연구원 세미나실에서 창립 18주년 기념 제205회 월례세미나를 갖고 한국교회 초기에 이뤄진 제주와 중국 산둥성에서의 선교 과정과 열매 등을 고찰했다.
‘제주와 산둥을 중심으로 살펴본 한국교회의 초기 선교사 파송’에 대해 발표한 민경운(성덕교회) 목사는 “한국교회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선교사를 파송했던 선교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07년 제주도로 파송된 이기풍과 1913년 산둥성에서 사역을 시작한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이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이라며 “제주와 산둥성 선교는 당시 한국교회의 자립선언과 같았다”고 강조했다.
미국 남·북 장로회 공의회 결의에 따라 1907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독노회가 조직됐다. 독노회는 한국인 일곱 명을 안수해 목사로 세웠고 그 중 이기풍을 제주도로 파송했다. 민 목사는 “독노회가 이기풍을 제주도로 파송한 것은 노회 설립을 축하하는 기쁨의 표시이자 한국교회가 외국 선교사로부터 받은 영적 축복에 대한 감사의 헌물”이라고 설명했다.
민 목사는 “제주 선교를 결정한 후 독노회는 외부의 도움 없이 선교비를 각 교회의 여전도회와 학생회 등에서 감당했다”며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 보고를 보면 제주 선교는 양적·질적으로 성장했고 교회에서 조사 영수 집사 등 일꾼들을 배출한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 선교를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산둥성 선교가 시작됐다. 민 목사는 “고 방지일 목사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가 해외 선교사 파송지로 산둥성을 택한 것은 조선이 중국 공자와 맹자의 윤리·도덕을 배웠으니 중국에 생명의 말씀으로 갚겠다는 의도였다고 소개했다”고 밝혔다. 이어 “방 목사는 이미 산둥성에서 선교하던 미국 북장로교와 중국장로교회, 우리 총회 3자의 합의로 산둥성 선교가 결정됐다고 설명했다”면서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산둥성에서 에큐메니컬 연합 선교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 목사는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산둥성 선교를 위해 1년 중 한 날을 감사일로 정해 선교비를 마련했다”며 “산둥성으로 파송된 선교사들도 세 가정이 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고난의 날을 보내면서도 선교를 위해 헌신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중국 선교가 시작된 지 2년밖에 안된 1915년 산둥성 래양교회에서는 재적 교인이 40여명으로 늘고 3명이 세례를 받는 결실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글·사진=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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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제주·산둥성 선교사 파송은 한국교회 자립선언”… 한국교회사학연구원 세미나
입력 2015-11-10 19:30 수정 2015-11-10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