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명문 주립대인 미주리대의 팀 울프(57) 총장이 캠퍼스 내 인종차별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학생들의 잇단 항의시위에도 꿈쩍 않던 울프 총장을 물러나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이 대학 풋볼팀의 보이콧 선언이었다. 풋볼은 미국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울프 총장은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들의 좌절과 분노를 충분히 알고 있다”며 “나의 사임으로 분열된 캠퍼스의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명문대 총장이 학생들의 사임 요구에 물러나는 것은 수십 년간 전례가 없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울프 총장은 그러나 지난주까지만 해도 학생들의 사임요구를 외면했다. 캠퍼스에서 연이어 벌어진 인종차별 사건에 항의하는 흑인 학생들의 주장을 묵살했다.
일련의 인종차별 사건은 지난 9월 미주리대 학생회장인 페이튼 헤드가 트럭을 타고 지나가는 백인 학생들로부터 흑인을 비하하는 야유를 들은 게 시작이었다. 지난달에는 홈커밍데이 행사를 준비하는 흑인 학생들의 무대에 한 백인 학생이 뛰어올라와 욕설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급기야 기숙사 벽에 인분으로 그려진 나치 문양이 나타나자 흑인 학생들은 흥분했다.
울프 총장은 출근차량을 저지하는 흑인 학생들을 무마하기 위해 “인종차별 개선책을 내년 4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학생들을 오히려 자극했다. 너무 미온적인 대응이라는 것이다.
단식농성과 항의시위가 잇따랐다. 일부 교수도 이틀간 수업을 거부키로 하는 등 총장에게 등을 돌렸다.
미주리대학의 인종차별 항의시위를 전국적인 관심사로 만든 건 이 대학 풋볼팀 선수들의 경기출전 거부 선언이었다. 그제야 대학이사회는 화들짝 놀랐다. 당장 14일로 예정된 브리검영대학과의 경기가 취소되면 부과될 벌금과 취소될 후원금 등 재정적 손실이 100만 달러에 달한다. 대학 명성에 금이 갈 뿐 아니라 신입생 모집에도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빗발쳤다.
1980년 미주리대학을 졸업한 뒤 IBM과 노벨(Novell) 등 IT 기업에서 근무하다 2012년 모교의 총장으로 임명된 그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던졌다. 울프 총장은 고교시절 풋볼팀을 미주리주 챔피언으로 이끈 쿼터백이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美대학에서 총장보다 센 건 풋볼팀
입력 2015-11-10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