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베꼈다고 밝히는 표절 작가 봤나”… 공쿠르상 수상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르메트르 ‘일침’

입력 2015-11-10 19:02
장편소설 ‘오르부아르’로 2013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르메트르가 10일 서울 중구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출간된 한국어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공쿠르상 수상작 ‘오르부아르’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르메트르(64)가 한국을 방문했다. 르메트르는 10일 낮 서울 중구 프랑스문화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어린 시절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기쁨을 독자들이 제 책을 읽으면서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문학적 목적을 ‘기쁨’이란 단어로 설명했다. “일차적으로 중요한 건 즐거움입니다. 저는 정말로 즐겁게 글을 쓰고 있거든요. 독자들도 기쁨을 느끼면서 열정적으로 제 책을 읽어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뒤에는 어떤 생각, 깊은 생각이 남기를 바랍니다.”

문학에서 즐거움이나 기쁨, 열정 등을 강조하는 그의 문학관은 대중소설에 대한 옹호에서도 드러난다. “저는 의도적으로 대중작가라고 얘기합니다. 대중소설은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읽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책을 모험소설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독자는 사회적 메시지에 주목할 수도 있고, 또 어떤 독자는 프루스트에 대한 패러디로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소설은 각자의 독자가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이자 세계 3대 문학상에 꼽히는 공쿠르상이 본격문학이 아니라 추리소설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것은 ‘오르부아르’가 유일하다. 소설은 1920년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두 젊은이를 등장시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전쟁 이후 국가가 어떻게 취급했는지 드러내고 폐허 위에서도 부를 축적하는 데 바쁜 기성세대 모습을 그려냈다.

작가는 “독자들에겐 모험소설처럼 읽히지만 저는 사회소설을 쓰고 싶었다”면서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저지르는 사기, 부조리, 음모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보편적인 메시지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르메트르는 시민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강사로 일하다가 55세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출간하는 책마다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소설은 모험, 서스펜스, 반전 등과 같은 추리소설적 요소를 띠면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르메트르는 늦은 데뷔에 대한 질문을 받자 “55세가 늦은 나이냐?”고 되묻고 “등단이나 출판은 늦었지만 계속 글을 쓰면서 살아왔고, 특히 문학을 신성시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문학과 살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책마다 맨 뒤에 ‘감사의 말’을 붙여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나 문장, 이미지를 빌려 쓴 작가들의 이름을 기록한다. ‘이 텍스트를 써가면서 나는 몇몇 작가들을 차용했다. 에밀 아자르, 루이 아라공, 제럴드 오베르…’ 같은 형식이다.

르메트르는 “글을 쓰다 보면 표현이나 이미지, 상황 등이 떠오르는데, 대부분 어디서 오는가 하면 이전에 읽었던 책들에서 온다”며 “책 마지막에 빚을 갚는 심정으로 그 작가들에게 감사의 글을 쓴다”고 말했다. 또 “문장이나 이미지를 빌려 쓰는 것과 표절과의 경계는 명확하다”면서 “무엇보다 표절 작가는 누굴 표절했다고 밝히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