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형제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선 그들이 북한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생활했는지를 먼저 공부해야 했다. 북한의 교육환경을 공부하던 우리 교사들은 북한에서는 시험 문제가 주관식으로만 출제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즉각 반영했다. 다가오는 시험 기간에 탈북청소년들에게 익숙한 방식인 주관식으로만 문제를 냈다. 그런데 잘볼 줄 알았던 탈북학생들이 논술 문제는 두 줄도 못 쓰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거의 비슷한 답을 썼다.
‘충성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쓰시오’라는 문제에 대해 탈북학생들은 거의 똑같이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해서 둘도 없는 목숨을 바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또 ‘해바라기’라는 시제를 주고 시를 짓게 하면 학생들은 ‘태양 같은 수령님을 바라보는 우리는 해바라기’라는 식으로 대동소이한 작품을 썼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북한의 국어 교과서를 살펴봤다.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북한 청소년들은 교과서 본문에 제시된 원문을 읽고 그것을 외워서 쓰는 방식(원문통달식)으로 시험을 봤던 것이다. 거기에서 한 글자라도 틀리면 점수가 깎였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쓰는 것 자체가 생소했던 것이다.
북한에서의 교육은 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편일 뿐이었다. 국어 교과 시간에 북한 학생들은 ‘말하기’ ‘읽기’ ‘쓰기’는 하는데 ‘듣기’ 교육은 받지 않았다. 그저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라고 외치며 살도록 가르칠 뿐이었다. 북한에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비판하며 자신의 논리를 이끌어내는 교육은 원천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한 뒤 반박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막무가내로 관철시키려고 했고, 주장은 강하게 하는데 설득은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사들은 탈북청소년들이 공부를 포기하지 않게 하려고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려 노력했다. 작정하고 시험 문제를 쉽게 낸 적이 있다. 평균 90점 이상 나올 것 같아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채점한 결과 평균 40점 정도가 나왔다. 너무 황당해서 “얘들아, 이렇게 쉬운 문제를 왜 틀려?”라고 물으니 솔직히 하나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잘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야지, 왜 묻지도 않니?”라고 다그치자 학생들은 “선생님, 다 알고 몇 개를 몰라야 물어 보죠. 다 모르는데 어떻게 다 물어 봐요”라며 울먹였다. 또 다른 학생은 “우리는 북한에서 배울 때 ‘왜’라는 질문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당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라야지 ‘왜’라고 물으면 그건 반동이잖아요. 공부할 때 원리를 묻지 않고 외우니까 모르는 건 그냥 넘어가게 되는 거죠”라며 스스로 문제점을 진단했다.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나는 마음이 짠해졌다. “선생님께서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데 어떻게 모른다고 할 수 있어요.”
한 탈북청년은 “북한은 군사문화가 일상생활에 자리 잡고 있는데 군인들은 절대로 자신의 약점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모른다거나 못 알아듣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할까봐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것이 공부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우리는 남한청소년들의 교육방식으로 수업을 하고 검정고시를 보는 미인가학교의 형태로는 탈북청소년들에게 적합한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설계하고 시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건물도 운동장도 없는 학교에서 학력인가를 받는 기적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역경의 열매] 조명숙 <13> 북한서 몸에 밴 암기식 공부 습관 고쳐주느라 고생
입력 2015-11-10 1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