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자유 총선이 치러진 다음날인 9일 미얀마 각지에서는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개표가 계속되는 가운데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집권 군부 정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에 압승을 거둔 것으로 속속 집계되면서 곳곳에서 성큼 다가선 민주화를 자축하는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양곤시내에 위치한 NLD 당사 앞에는 수치 여사의 지지자 수백명이 모여 ‘강인한 공작새’(NLD의 상징)란 제목의 응원가를 불렀다. 이들은 “그녀(수치)는 온 세계가 다 아는 민중의 지도자…독재는 끝났다, 독재는 물러가라”는 등의 가사가 담긴 노래를 불렀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제2도시인 만달레이 등 주요 도시에서는 NLD 지지자들이 광장에 나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중계되는 개표 결과를 지켜보며 환호했다.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개표 결과에서 NLD는 선전한 반면 USDP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개표 초반부터 NLD가 하원 12석과 지방 의석 4석 가운데 15석을 차지하는 등 큰 격차로 앞서 갔다. USDP는 텃밭인 행정수도 네피도에서도 NLD에 밀렸다고 미얀마타임스는 보도했다. USDP 소속 거물급 정치인들도 곳곳에서 고전했으며, 군 출신으로 유력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슈웨 만 하원의장도 이날 일찌감치 자신의 지역구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 후보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앞서 NLD도 자체 발표를 통해 선거에 배분된 상·하원 의석 가운데 70% 이상을 확보할 것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NLD 발표대로라면 선거와 무관하게 전체 의석의 25%를 군부에 무조건 할당한다는 헌법상 ‘핸디캡’을 극복하고 NLD가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1962년 3월 네 윈 육군총사령관이 쿠데타로 집권한 뒤 군부 지배가 계속된 미얀마에서 53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에 정권이 넘어가게 된다.
NLD가 집권하면 현 테인 세인 정부가 2011년부터 추진해 왔던 민주화 개혁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수치 여사는 집권하면 실질적인 민주화를 단행하고 법치주의 정립, 소수민족과의 화해, 부패 척결, 헌법 개정, 경제 개발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거 이후 집권 경험이 없는 NLD가 군부 출신 인사들이 장악한 행정부를 원활히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AP통신은 “NLD의 과반 승리가 확정되더라도 이는 진정한 민주화로 가는 첫 번째 단계에 접어든 데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서부 라카인주 등에서 계속되는 소수민족 간 분쟁, 불교도와 소수인 이슬람교도 사이의 종교 분쟁도 미얀마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동안 수치 여사도 로힝야족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해 일각에서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서 적절치 못한 처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군부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군부는 총선을 앞두고 “선거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1990년에도 선거 결과를 뒤집고 정권을 내놓지 않은 적이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는 국방부, 내무부, 국경경비대 등 주요 3개 부처 장관을 지명할 수 있고 유사시 정부 통제권을 넘겨받을 수 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미얀마의 봄] “독재는 끝났다, 독재는 물러가라” 거리 곳곳 응원가… 민주화의 노래 울려 퍼져
입력 2015-11-09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