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진위 논란] 유족 측 “천 화백, 눈동자 금분 1977년에도 사용… 가짜 맞다”

입력 2015-11-09 21:52 수정 2015-11-09 22:26
진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미인도’(왼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 대중화를 위해 만든 이 작품의 아트포스터가 대중목욕탕에 걸린 걸 지인이 보고 천경자 화백에게 알리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오른쪽은 천 화백이 1980년 중후반이 아닌 77년 이미 인물 눈동자에 금분(흰색 점선 안)을 사용했다며 유족이 증거로 제시한 작품. 국민일보DB·유족 제공

한국 최대 위작(僞作) 스캔들인 천경자(1924∼2015) 화백의 ‘미인도’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16년 만의 재감정이 이뤄질까.

‘작가는 가짜,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짜’라고 주장하는 이 희대의 사건은 1991년, 99년 두 차례에 걸친 공식 조사를 통해 진작으로 종결지어졌다. 하지만 천 화백 죽음을 계기로 유족과 위조범이 다시 위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고, 여기에 정치권 일각에서 재감정 요구까지 제기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천 화백 유족은 9일 성명서를 배포하고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인 정모 평론가가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천 화백의 명예를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며 법적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족 측이 지목한 평론가는 정준모 현 광주아시아문화전당 전시감독이다. 앞서 정 감독은 지난 1일 ‘천경자 미인도, 어떻게 위작 사건 전인 1990년 발행된 도록에 실려 있을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미인도’가 진짜라며 논란에 뛰어들었다.

유족 성명서는 이에 대한 반박인 셈인데,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천 화백이 인물의 눈동자에 금분을 쓴 것은 80년대 중·후반 이후라는 정 감독의 주장과 달리 이미 77년 무렵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77년 작인 ‘미인도’의 위조범 권춘식씨가 “당시 천 화백은 눈동자에 금분을 쓰는데 나는 값이 싼 노란 물감으로 채색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 천 화백이 주로 이용하던 표구점 동산방의 일련번호가 미인도 뒤에 기입돼 있어 진짜라는 정 감독 논거도 허위사실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91년 동산방 주인이었던 박주환씨의 증언 자료도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진위 논란 이전인 90년 발행된 금성출판사 도록에 문제의 ‘미인도’가 수록돼 있다는 주장도 국립현대미술관이 제공한 것인 만큼 믿기 힘들다는 게 유족들 입장이다.

‘미인도’ 위작 사건은 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 전에 출품된 ‘미인도’에 대해 천 화백이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화랑협회 감정 결과 진품으로 판정나면서 잠잠해진 논란은 99년 청전 이상범 그림을 위조해 체포된 권씨가 “‘미인도’는 내가 위조했다”고 주장하면서 재차 불거졌다. 그러나 당시 권씨는 옥중 인터뷰에서 ‘미인도’를 위조한 시기가 84년이라고 말해 신뢰성을 잃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장했던 이 그림이 압수돼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들어간 시기가 80년 4월이기 때문이다.

권씨는 ‘미인도’ 진위 논란이 다시 불거지자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84년은 당시 기자가 자의적으로 쓴 것이고, 실제로 (위조 시기는) 78년이 맞다”고 번복했다. 하지만 권씨가 78년 참고해 그렸다는 ‘장미와 여인’은 81년에 제작됐다. 아울러 통상 도록 제작 시 색 보정을 위해 작가와 협의한다는 점에서 유족 주장에도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이석현 국회부의장이 ‘미인도’ 재감정을 국립현대미술관 측에 요청해 주목된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무엇이 고인을 위한 길인지 생각하고 여론의 추이도 봐가며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