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포탈·분식회계 등 8000억원대 경영비리로 기소된 조석래(80) 효성그룹 회장의 1심 재판 심리가 사건 접수 670일 만인 9일 종결됐다. 재판 준비절차에만 9개월이 걸렸고 정식 재판도 33차례나 열렸다.
비슷한 시기 기소됐던 이재현 CJ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그 사이 대법원 판결까지 받았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비리 혐의로 기소된 기업인의 1심 재판이 이렇게 길어진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 재판이 22개월이나 진행된 이유는 뭘까. 가장 표면적인 사정은 조 회장의 ‘건강 악화’였다. 조 회장은 지난해 1월 불구속 기소됐다. 앞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고령·지병 등을 이유로 기각됐다. 이는 재판 장기화의 전조(前兆)였다.
지난해 6월 지팡이를 짚고 법정에 나온 조 회장은 재판부에게 “성실히 재판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달 뒤 전립선암·심장부정맥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출국했고, 50여일 뒤에야 법정에 재출석했다. 변호인은 “팔순의 고령이고 오랜 재판에 심신이 지친 상태”라고 했다.
이후 효성 측의 ‘의도적 재판 지연’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증인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거나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증인으로 나온 현직 임원이 검찰에서의 진술을 법정에서 뒤바꿔 위증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보통 위증 수사는 판결문이 나오면 하는데, 워낙 (증인 회유가) 심각하니 수사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10월 공판에선 조 회장이 직접 효성 재무본부장을 회유·협박하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검찰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애초 이 사건을 맡았던 재판장(부장판사 김종호)은 “증인 수를 줄이거나 서증조사로 대체하겠다”며 진행을 서둘렀지만 재판은 법관 인사(人事)가 있었던 지난 2월까지 지연됐다. 바뀐 재판부의 일성(一聲)도 “서너 차례 기일을 진행하고 재판을 마무리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조 회장 측의 거듭된 ‘건강 악화’ 주장에다 같은 재판부에 STX, 웅진 등 굵직한 기업 사건들이 밀리면서 선고는 내년을 바라보게 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회삿돈을 개인적 용도로 유용하고, 사적 소유물로 전락시켰다”며 조 회장에게 징역 10년과 벌금 3000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함께 기소된 장남 조현준(48) 효성 사장에겐 징역 5년과 벌금 150억원을 구형했다.
변호인 측은 “조 회장의 해외 페이퍼컴퍼니(CTI, LF) 관련 공소사실은 사실과 다르고, 이로 인한 수익은 모두 해외법인의 부실정리를 위해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유죄를 선고하신다고 해도 피고인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법정에 나온 조 회장은 “회사 일을 성실히 한 것밖에 없다”며 “부디 너그러운 선고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효성 관계자들은 재판 1시간 전부터 방청석을 모두 선점했다. 다른 방청객의 참관마저 어렵게 되자 결국 재판부가 나서서 효성 직원들을 내보내기도 했다. 선고공판은 내년 1월 8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조석래 효성 회장 670일만에 1심 심리 종결… 준비절차 9개월 공판 33회로 결국 ‘내년 1월로 넘어가’
입력 2015-11-09 21:44 수정 2015-11-10 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