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또 깜깜이 총선?… ‘벼락치기’ 졸속 결론 우려

입력 2015-11-09 21:09 수정 2015-11-10 00:45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왼쪽)가 9일 국회의장실에서 정의화 국회의장과 만나 총선 선거구 확정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이동희 기자

19대 국회의 선거구 획정 문제가 총선 한 달 전에야 최종 확정됐던 16대 국회와 판박이로 흘러가고 있다. 16대 국회는 선거구 획정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다 결국 총선을 37일 앞둔 2004년 3월 9일 선거구를 획정했다. 당시에도 선거구 간 인구편차를 줄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의원정수,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수 비율 문제 등 지금과 똑같은 주제들로 여야가 논쟁을 벌였다.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11월 13일)을 나흘 앞둔 9일에도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12년 전 상황이 19대 국회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19대 국회 선거구 획정 ‘시계제로’=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제안으로 의장실에서 선거구 획정안 등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 실무 협상에 속도를 내기로 해 여야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는 10일 ‘2+2회동’을 갖는다. 여기서 입장차를 좁히면 여야 당 대표와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 정개특위 간사가 참여하는 ‘4+4회동’으로 확대해 담판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13일 법정 시한까지 획정 기준이 마련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음달 15일인 예비후보자 등록일까지 결론이 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여야는 헌재가 지난해 10월 선거구 인구편차를 2대 1 이내로 조정하라고 결정한 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획정 기준에 합의하지 못했다. 핵심 쟁점은 의원정수 확대 여부,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수 비율,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 농어촌 지역 대표성 확보 문제였다. 지난 7월, 사상 처음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독립 기구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원회도 여야 추천 위원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려 지난 10월 스스로 선거구 획정을 포기했다. 여야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등 현안 탓에 선거구 획정을 한동안 논의하지 못했다.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인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이 이날 내놓은 중재안을 두고도 뒷말이 나왔다. 이 의원은 의원정수 300석을 유지하면서 현행 지역구 의석(246석)을 14석 늘리자고 했다. ‘농어촌 특별선거구’도 도입하자고 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야당에는 사표 방지를 일부 이룰 수 있는 ‘균형의석’ 제도를 제안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농어촌 특별선거구는 명백한 위헌”이라며 “새누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받아야 논의가 진전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졸속 합의’ 16대 국회 전철 밟나=19대 국회는 16대 국회의 선거구 획정과 유사한 경로를 걷고 있다. 16대 국회 당시인 2001년 헌재는 2003년 12월 31일까지 선거구 인구편차를 3대 1 이내로 줄이라고 결정했다. 16대 국회 정개특위는 2003년 4월 시민단체가 국회의장과 양당 원내대표를 “선거구 획정위가 제대로 구성되지 않는다”며 직무유기죄로 고발하고 나서야 “시급한 문제”라며 선거구 획정 기준 논의를 시작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야당인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은 그해 10월까지도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의원정수 문제 등에 관련된 명확한 당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심지어 스스로 정치개혁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외부 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에 정치개혁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국회는 그해 12월 정개협이 제안한 ‘의원정수 299석, 지역구 199석, 비례대표 100석’ 방안도 거부했다. 여야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야3당은 같은 달 23일 ‘선거법 개정은 합의 처리한다’는 관례를 깨고 관련 사안을 ‘날치기’로 처리하려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육탄 저지로 실패했다.

선거구 획정이 해를 넘기면서 당시 선거구 전체가 위헌인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두 달여가 지나고 나서야 여야는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수를 동시에 10석 이상 늘리는 방식으로 합의했다. 19대 국회가 선거구 획정에 속도를 내지 못할 경우 16대 국회의 ‘복사판’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는 “19대 국회의 선거구 획정도 16대처럼 해를 넘길 것이 확실해 보인다”며 “여야가 일부 양보하는 방식으로 선거구 획정 기준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결국 내년 총선 직전 무턱대고 의원정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졸속 합의하게 돼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