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선 요즘 서너 명만 모이면 내년 총선이 화제에 오른다. “어느 지역에 누가 내려온다고 하더라”에서 시작한 대화는 대개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한다”거나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자초한 일”이라는 말로 끝난다고 한다. 청와대발 ‘대구 물갈이설(說)’이 바닥 민심에까지 파고들었단 얘기다. 지난 6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대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요동 치는 대구 민심=9일 유 의원의 부친 유수호 전 의원 상가(喪家)에서도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대구 출마설이 관심사였다. 50대 조문객이 밥을 한술 뜨면서 “그 사람은 왜 경주에 안 가고 여기에 온다고 하나”라고 하자 맞은편에 앉은 일행이 “아무리 대구 의원을 ‘나무 막대기’라고 해도 위에서 내려 보내면 무조건 찍어줄 줄 아나”라고 받았다. “장관 하던 사람들은 고개가 빳빳해서 선거 못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 장관은 고향인 경북 경주 대신 유 의원 옆 지역구인 대구 동갑 출마가 거론되고 있다. 이 지역 현역은 유 의원과 가까운 류성걸 의원이다. 류 의원은 전날 빈소에서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2시간 가까이 머물렀다. 비슷한 시각 빈소에 있었던 친박(친박근혜) 윤상현 의원은 기자들에게 참신한 공천 얘기를 꺼내며 대구 물갈이설에 또 한번 불을 지폈다. 대구 출마를 준비 중인 이재만 전 동구청장(동을), 이인선 전 경북부지사(중·남) 등도 빈소에서 열심히 얼굴을 알렸다. 이렇듯 대구는 이미 현역 의원과 친박계 후보 간 확실한 대결구도가 형성돼 있다.
대구는 박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곳이지만 그와 별개로 ‘낙하산 공천’ 대해선 반감이 적지 않았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40대 신모씨는 “선거 때만 되면 지역 민심과는 전혀 상관없이 윗바람이 불고 물갈이 얘기가 나오니 인물이 클 수가 없다”며 “그런 사람들이 지역에 대한 애정이 있을 리 없다”고 했다. 현재 대구 지역 의원 12명 중에서 7명이 19대 때 처음 배지를 달았다. 당시 절반 이상이 교체된 것이다. 택시기사 천모(64)씨는 “대구에 일자리가 없어서 젊은 사람들이 서울로, 부산으로 다 떠나고 있다”며 “여당이 너무 방심하는 것 같다. 내년 총선에서 야당이 절반 정도 당선돼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이모(62)씨는 “뽑아줬더니 앞장서서 대통령을 도와준 의원도 없고, 그렇다고 고언(苦言)을 한 사람도 없다”며 “4년간 눈치만 봤지 한 게 없다”고 혹평했다. 여권 소식에 밝은 한 의원은 “대구가 여권의 중심인데 현역 의원들로 선거를 치르기엔 좀 약하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앞으로 여러 사람이 내려오지 않겠나”라고 했다. 청와대 전·현직 참모와 내각 출신들을 총동원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지 않은 것도 내내 입방아에 올랐다. 대다수 조문객들은 박 대통령과 유 의원의 불편한 관계를 떠올리며 “그렇다고 애사(哀事)에 조화 하나 안 보낸 건 너무했다”고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대구시에 근무한다는 40대 정모씨는 “유족이 조화를 안 받겠다고 해서 안 보낸 걸 두고 확대 해석하는 게 더 이상하다”고 했다. 백발이 성성한 한 할머니는 유 의원의 모친 손을 꼭 잡고 “아드님 말이에요. TV에서 볼 때마다 사모님 생각나서 가슴이 조마조마한데, 유씨 고집은 말도 못해요. 그래도 대통령과 잘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라고 안타까워했다.
◇“승민이가 어려울 때 기회주고 떠났다”=유 의원은 부친상을 계기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많았다. 빈소엔 이틀 내내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유 전 의원 가족을 오랫동안 지켜봤다는 70대 할아버지는 “승민이가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 부친이 기회를 주고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 전 의원은 대구에서 존경받는 큰 인물”이라며 “그 일가가 잘되도록 대구 시민들이 힘을 줘야 한다”고 했다.
대구=권지혜 기자 jhk@kmib.co.kr
[르포] 유승민 부친상 조문객들 “낙하산 공천 그만” “물갈이도 필요”… 대구는 뒤숭숭
입력 2015-11-09 22:20 수정 2015-11-09 2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