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에 절대 강자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시청률은 30% 안팎에 이르렀고, 하는 것마다 빵빵 터졌다. 지금도 강력한 팬덤을 거느린 원조 리얼 버라이어티 ‘무한도전’(MBC)과 야외 버라이어티 ‘1박2일’(KBS), 들고 나오는 코너마다 유행어를 만들어 냈던 ‘개그 콘서트’(KBS)가 전성기를 달리던 2008∼2011년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3∼4년 ‘본방 사수’ ‘채널 고정’이 힘을 잃었다. 요즘은 시청률 15%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할 정도다.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예능 판도를 살펴봤다.
◇역시 리얼 버라이어티=“2005년 황소랑 줄다리기 할 때부터 봤다.” 무한도전 팬들이 자신의 팬심이 얼마나 깊은지를 증명할 때 하는 말이다. 1%대의 굴욕적인 시청률로 시작해 국민 예능 반열에 오른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원조로 꼽힌다. 무한도전은 10년 동안 꾸준히 트렌드와 이슈를 만들어내며 강한 파급력을 갖게 됐다. 하지만 15% 안팎의 시청률 탓에 종종 ‘위기론’이 제기된다.
1박2일은 무한도전 이후 가장 성공한 예능 프로로 꼽힌다. 1박2일도 초기엔 아류 시비가 있었지만 나영석 PD만의 색깔이 입혀지면서 고른 연령층에서 사랑을 받았다. 멤버가 여러 번 바뀌며 시즌3까지 이르렀다. 예전만큼 화제가 되진 않지만 건재하다.
인기는 수그러들었지만 리얼 버라이어티 장르에서 스테디셀러가 가장 많이 나왔다. 10년 된 무한도전, 8년 된 1박2일, 7년 된 ‘우리 결혼했어요’(MBC), 5년 된 ‘런닝맨’(SBS) 등 장수 프로그램이 많다. 한 예능 작가는 “리얼 버라이어티는 형식과 주제에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새로운 트렌드를 접목시키기 용이하고, 고정 멤버가 고정 시청층을 끌어들이면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꾸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10일 기준 방송 중인 지상파·케이블 대표 예능 중 10여개가 리얼 버라이어티로 분류된다. ‘삼시세끼’(tvN), ‘진짜 사나이’ ‘나혼자 산다’(이상 MBC), ‘우리동네 예체능’ ‘나를 돌아봐’ ‘청춘 익스프레스’(이상 KBS), ‘정글의 법칙’(SBS) 등이다.
◇질리지 않는 맛, 음악과 음식=음악과 요리 예능은 올해 베스트셀러다. ‘복면가왕’(MBC)과 ‘집밥 백선생’(tvN)의 높은 인기가 대표적이다. 복면가왕은 지난 4월 첫 방송 이후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고, 집밥 백선생은 대한민국에 ‘집에서 해먹는 요리’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011년 ‘나는 가수다’(MBC) 이후 음악 경연 예능은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불후의 명곡’(KBS), ‘너의 목소리가 보여’(Mnet), ‘히든싱어’(jtbc) 등 히트 작품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다만 경연 프로그램에 나올만한 가수가 한정돼 있어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게 약점이다.
요리 예능의 인기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 예능 PD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방송을 모니터링 해보면 이미 몇 년 전부터 ‘쿡방’(요리 방송)이 인기였다. 우리나라도 쿡방 트렌드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힘 잃은 토크쇼, 개그 프로, 육아 예능=지난 6일 6년 동안 이어져 온 단체 토크쇼 ‘세바퀴’(MBC)가 폐지됐다. 2012년 ‘놀러와’(MBC)가 방송 8년 만에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로 결국 시청률이 문제였다. 두 프로그램 모두 마지막 방송 시청률이 4%대에 그쳤다.
국민 MC 유재석이 2001년부터 15년 째 방송 중인 ‘해피투게더’(KBS)와 B급 토크쇼를 지향하는 ‘라디오스타’(MBC·2007년부터 방송)는 장수 토크쇼다. 게스트에 따라 시청률과 화제성에서 기복이 나타나지만 안정적인 진행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임팩트는 약하지만 토크쇼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장르다. 리얼 버라이어티보다 품이 덜 들고, 무대 장치나 음향 장비를 갖춰야 하는 음악 예능보다 돈이 덜 든다. 진솔한 이야기가 주는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토크쇼는 일반인과 고민 상담에서 살 길을 찾고 있다. ‘안녕하세요’(KBS), ‘힐링캠프’ ‘동상이몽’(이상 SBS) 등은 보통 사람들의 ‘사연’이 프로그램을 이끄는 힘이 되고 있다.
매년 말 예능 시상식마다 “개그맨이 설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매년 더 나아지길 기대하지만 개그 프로그램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유일하게 코너마다 대박을 치며 크게 인기를 모았던 ‘개그콘서트’(KBS)마저 10% 안팎의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다.
육아 예능도 예전만 못하다. ‘슈퍼맨이 돌아왔다’(KBS)는 높은 시청률을 내고 있지만 추성훈·사랑 부녀가 잠시 빠져 있고 엄태웅·지온 부녀도 하차하면서 힘을 잃었다는 평가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리얼 버라이어티 ‘강세’-음악 경연·쿡방 ‘인기’-토크쇼·개그·육아 ‘고전’… 예능 프로그램 판도
입력 2015-11-10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