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학 실험실의 안전불감증을 경계한다

입력 2015-11-09 17:46
건국대 집단 폐렴 발병 사태는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인재로 귀결되고 있다. 방역당국은 실험실의 썩은 동물사료에서 발생한 곰팡이균을 발병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곰팡이균이 실험실 공기 배관을 통해 건물 전체로 퍼져 감염을 일으켰을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관리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라는 얘기다.

현 ‘실험실 안전수칙’에는 동물사료 부패실험을 격리된 공간에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건국대가 관련 규정을 어기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고 해서 실험실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까지 면제되는 건 아니다. 지난달 19일 처음 발생한 이래 20일 가까이 되도록 발병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방역당국의 무능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의 안전불감증은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같은 그 엄청난 난리를 겪고도 도대체 나아진 게 없다.

비단 건국대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연구실 안전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학 실험실에서 일어난 안전사고는 873건에 달했다. 이는 공공연구소, 기업연구소를 포함한 전체 실험실 사고(965건)의 90%를 넘는 수치다. 지난해 12월 현재 실험실은 대학의 경우 4만1592개, 공공연구소와 기업부설연구소 등 연구기관이 4만7786개로 엇비슷한데 대학의 사고 발생률이 월등히 높은 것은 그만큼 대학의 안전의식이 낮다는 방증이다.

정부의 현장지도 결과 폐기물의 미생물이 공기 중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폐기물 용기 뚜껑을 닫아놓는 것이 원칙인데 가장 기본적인 이런 원칙조차 지키지 않은 대학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실험실에서 식사나 군것질을 하는가 하면 심지어 세균을 보관하는 실험용 냉장고에 음식을 함께 넣어두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까지 있었다니 이런 사고가 안 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발암물질을 비롯한 여러 위험물질을 다루는 화학 실험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전에 미리 통보하고 조사를 나가는 지금의 현장점검 시스템으로는 사고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 안전 인력과 예산을 늘리는 등의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연구인력 개개인이 확실한 안전의식을 갖도록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