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명숙 <12> 시간 지나도 매사에 비판적인 탈북형제들에 당혹

입력 2015-11-09 18:11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이 2006년 스승의 날에 학생들로부터 받은 카네이션을 들고 감격스럽게 웃고 있다.

2004년 여명학교 설립 후 나는 교감으로 사역하게 됐다. ‘자유터 학교’까지 함께 운영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잠자고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탈북형제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그들을 가르치면서 언젠가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민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는 것이 많아졌다. 하지만 탈북형제들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어딘가 막혀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아무리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시도해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교육 환경이 열악했지만 여명학교 교사들은 최선을 다했고 학생들은 행복해했다. 그러나 졸업생들에게 여명학교에 대해 물으면 비판적으로만 답했다. 그때마다 속상하고 허탈했다. 이런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내게 졸업생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천진한 얼굴로 다가와 안아줬다. 오히려 그 모습이 학교를 비판할 때보다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자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래야 탈북형제들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60년 가까이 분단된 채 살아왔기에 우리는 북한 사람들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면서도 북한 관련 사역을 할 때는 남한의 방식과 시각으로 그들을 변화시키려고만 했던 것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서운했고 오해가 깊어졌던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일할 때는 기본적으로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배려할 점부터 찾았더니 그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탈북형제들을 위해 일을 할 때는 ‘그들이 남한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앞섰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헤매고 시행착오만 쌓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탈북형제들에게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평가할 때 비판적으로만 이야기하지? 너희들이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걸 아는데도 너무 비판적인 말 때문에 상처받을 때가 많아.”

나의 돌직구 질문에 탈북형제들은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내게 조목조목 설명했다.

“선생님, 우리는 북한에서 여덟 살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라는 것을 해요. 학급 친구를 비판하는 것인데요. 10년 넘게 이렇게 살다 보니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면 습관처럼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는 비판을 제대로 해야 선생님들이 빨리 끝내주니까 심하게 하는 거죠. 그렇지만 그 마음이 진심은 아니에요. 북한은 남한처럼 장난감이나 게임기가 없기 때문에 친구가 제일 소중하거든요. 그래서 서로 심하게 비판해도 다 이해하고 손잡고 집에 가요.”

그제야 그들이 왜 비판적으로 발언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남한에서 그렇게 하면 함께 손잡고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끊어진다”는 조언에 학생들은 깜짝 놀랐다. 또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에도 학생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선생님, 북한은 여기처럼 개인마다 시계나 휴대폰을 갖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약속도 정확하게 시간으로 하는 게 아니고 내일 보자는 식으로 해요. 그래서 학교 갔다가 오는 길에 들러서 있으면 보고 없으면 그냥 가요. 정말 중요한 일이면 올 때까지 기다리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어떤 집사님하고 낮 1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제가 30분 정도 늦었어요. 전화를 처음 접하고 시계도 처음 차 보니 늦는다고 연락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어요. 길도 잘 모르고요. 그래도 열심히 달려갔는데 오히려 그분은 굉장히 기분 나빠 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저도 속상하고 기분도 나쁘더라고요.”

그렇게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니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님과 성경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가며 이해하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