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권순경] 시민과의 약속, 골든타임

입력 2015-11-09 18:07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온 국민의 염원 속에 국민안전처가 출범한 지난 1년간 안전과 관련해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가 ‘골든타임’일 것이다. 필자는 ‘시민과의 약속을 어떻게 하면 잘 지켜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놓고 끝없이 고민하였고, 그 답을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목민심서 애민 6조 구재(救災)에 의하면 ‘모든 재난 발생 시 구조활동은 자신이 재난을 당한 것처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凡有災厄 其救焚拯溺 宜如自焚自溺 不可緩也)’고 적혀 있다. 고전의 평범한 구절을 여러 번 되뇌고, 뜻풀이를 하니 나름대로 목표와 방법이 뚜렷해졌다.

첫째, ‘범유재액(凡有災厄)’ 즉, 시민의 입장에서 모든 재난을 55개 유형으로 분류하고 골든타임 목표를 정했다. 풍수해·산사태·가뭄 등 자연 재난에서부터 화재·붕괴·선박전복 등 인적 재난에 이르기까지 재난 유형별로 특징을 분석해 ‘치명적 위해요소’와 ‘핵심 행동요소’를 추출하고 수치화된 목표를 세웠다.

둘째, ‘기구분증닉(其救焚拯溺)’ 즉, 구조활동을 위해 모든 대응력을 동원할 체계를 구축했다. 재난 초기 신속한 집단 대응을 위해 ‘SNS 상황전파 시스템’을 정착시켜 현재 국가와 지방 간 재난 상황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고 있다. 내년에는 사이버 재난현장 컨트롤타워인 ‘스마트 긴급구조통제단 시스템’을 활용해 재난 현장에서 필요한 자원을 적재적소에 동원할 예정이다.

셋째, ‘의여자분자닉(宜如自焚自溺)’ 마치, 자신이 재난을 당한 것처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안전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2018년까지 서울시민의 1%인 10만명을 ‘시민안전파수꾼’이라는 안전지킴이로 양성하면 안전문화 확산의 구심점 역할을 해낼 것이다. 기존 교육이 일방적 지식 전달 위주였다면 안전파수꾼 교육은 시민 스스로 실천력을 길러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넷째, ‘불가완야(不可緩也)’ 즉, 골든타임 내 신속한 대응을 위하여 끝없이 노력하고 있다. 소방안전지도를 활용한 실시간 교통상황 확인, 소방관서 앞 교통신호 제어 시스템 구축, 소방차 길 터주기 국민 참여형 훈련 등으로 출동에서 현장 도착까지 올 상반기 서울시 기준 5분10초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노력들이 열매를 맺고 있다. 올 2월 동작구 사당동 종합체육관 공사장 붕괴 사고 때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현장에 11명의 매몰자가 있다는 신고를 접하고 서울시 구조대와 구급대를 초기에 총력으로 동원하였고, 사고 발생 후 88분 내에 11명 전원을 생존 구조했다. 붕괴의 경우 출혈 환자가 다수 발생하고, 4시간 내 응급처치를 못할 경우 사망 확률이 높아진다는 통계가 있다. 이에 ‘붕괴 사고 발생 시 4시간 내 구조를 완료해야 한다’는 목표를 정하고, 적극 대응했기에 전원 구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올 4월 강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희망을 보았다. 길을 가다 쓰러진 50대 남성을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3분 만에 회생시켰던 것이다. 그 초등학생은 사고 발생 4시간 전, 인근 소방서에서 심폐소생술을 배웠고, 배운 대로 실천해 골든타임을 지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점은 국민안전처 발족 이후 확충된 소방안전교부세로 현장의 대원들이 절실히 원하는 신형 장비를 적재적소에 보강할 수 있게 되며, 소방·경찰·군이 재난안전 통신망으로 상호 연결되어 대형 재난 발생 시 국가 차원의 대응을 위한 단일망이 구성된다. 중앙과 지방의 원활한 움직임은 골든타임 확보에 큰 도움이 되어 시민에게 안전한 생활을 제공할 것이다.

권순경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