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김정은의 ‘경제 행보’

입력 2015-11-09 17:47 수정 2015-11-09 18:11

최근 방한한 존 에버라드 전 북한 주재 영국대사는 평양이 많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지인들의 전언이라며 커피숍 레스토랑이 무척 많이 생기는 등 외적 변화가 뚜렷하다고 밝혔다. 김정일 집권 시기인 2006∼2008년을 평양에서 보냈던 그는 “김정은이 아버지가 하지 못했던 경제 개혁을 시도 중인 것은 확실하다”는 관측을 내놨다. 지난달 말을 전후해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 선수단을 이끌고 평양을 다녀온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도 “예전 평양은 다소 칙칙했던 게 사실이지만 이번에 본 모습은 굉장히 현대화됐다”고 말했다.

북한, 적어도 평양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외신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신문지로 창문이 가려져 있던 상점들이 바뀌었고 진열품도 꽤 다양하게 쌓여 있다(대니얼 핑크스턴 국제위기기구 서울사무소장). 널찍해진 도로들과 지나다니는 차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윌 리플리 CNN 기자). 화사한 옷차림에 짝퉁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여성을 담은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권력집중적인 북한 체제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런 변화의 출발점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일 공산이 크다. 권력승계 즈음 내외신들은 그가 유럽 유학파이자 전후 세대여서 보다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노선을 걸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통일부가 분석한 김정은의 공개 활동을 보면 민생을 적잖이 의식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지난해의 경우 172회 ‘현지 지도’ 중 경제 부문이 62회(36%), 군사 56회(33%), 사회문화 29회(17%), 정치 24회(14%)였다. 올 상반기에는 78차례 가운데 경제 쪽이 46%, 군사 41%, 정치 8%, 사회문화 5% 순이었다. 생필품 공장이나 양어장같이 주민들이 피부에 닿듯 느끼는 곳을 찾는 비율이 가장 높고 그것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김정은은 올해 가장 큰 국가 행사였던 노동당 창건 70주년에서 육성연설을 하면서 ‘인민’을 90여 차례 언급했다. ‘인민에 대한 깊은 감사’로 연설을 시작해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를 다짐하며 끝을 맺었다.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핵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런 움직임이 진정한 변화인지, 일시적인 것인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지배체제가 불안정해 의도적으로 민생 행보를 과시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설령 진정성이 있다 하더라도 내부 상황에 따라 일시에 바뀔 여지도 다분하다. 하지만 일단 이런 방향은 바람직하다. 비록 전시성이라 하더라도 이런 방향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경제를 돌보는 것은 북한 주민은 물론 지배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핵과 미사일을 들이대고 남한의 빈틈을 노려 비대칭형 도발을 자행하는 식으로는 정권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생과 경제에 살을 붙여 내부 위험성을 줄여나가면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일은 우선은 멀어 보이지만 결국은 가장 가까운 길이다. ‘은둔형 외톨이’에서 벗어나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와 더불어 호흡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북한의 경제 행보는 우리도 격려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낙관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대할 것도 아니다. 도발에는 ‘2∼3배 보복’이든 ‘원점 타격’이든 단호하게 대처하되 민생을 위한 노력은 품을 넓혀 끌어안아야 한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면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자신이 우왕좌왕하는 경우다. 민생은 통 크게 지원하고 도발은 뼈저리게 응징한다는 일관되고 분명한 신호를 주지 못하면 언제든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야기할 수 있다. 외견상 모순돼 보이지만 이런 자세를 여야 없이 견지함으로써 ‘문제는 경제’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북한에 줘야 한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