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지난 6일 발표한 ‘국정 교과서 관련 불법행위 엄단’ 방침이 반대여론 진압용이라는 지적을 부정할 수 있을까. 경찰은 “폭행·협박 등에 대해 용의자를 반드시 추적·검거하겠다. 명예훼손과 모욕도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명분은 집필진 보호다.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국정 교과서 집필진에 대한 협박, 인터넷상 명예훼손 등 불법행위 우려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며 보수 매체의 기사를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신변보호 요청이 있으면 즉시 응하겠다”는 안내까지 친절히 덧붙였다.
집필진은 과연 위태로운 상황인가. 지금 그들에게 쏟아지는 말은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통상의 악의적 비방과 비교해 수위가 약할뿐더러 상당수는 공론의 성격이 강하다. 경찰이 말하는 국정 교과서 관련자 ‘폭행’은 시도된 사례도 알려진 바가 없다.
무엇보다 피해자 고소나 요청도 없는 상황에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까지 경찰이 앞장서 처벌을 운운한 적이 얼마나 되는가. 인터넷 언어폭력 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면 이보다 심한 사례, 이만큼 주목받은 사례는 널렸다.
경찰이 이런 방침을 밝힌 시점은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직후였다. 어딘지 공교롭지 않다. 성추행 논란을 염두에 뒀었다면 성범죄 용의자를 감싸려 한 꼴이 된다.
정부가 동원한 것인지, 경찰 스스로 나선 것인지는 몰라도 경찰이 국정 교과서 사태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국정화 태스크포스(TF)’ 경찰 신고 녹취록 논란(국민일보 10월 29일자 1·3면 참고)이 벌어졌을 때 경찰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녹취록을 공개해 비밀 TF 의혹을 키운 셈이었으니 문책을 우려했을지 모른다. 보도 직후 경찰은 녹취록이 외부로 나간 경위를 파악해 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 그 내용이 청와대에도 전달됐으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경찰은 정부나 대통령에 관한 문제라면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무리한 차벽 설치와 최루액 살포, 정부 비판 전단에 대한 과잉 단속 같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어쩌면 경찰은 정권 비호 조직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싫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강창욱 사회부 기자 kcw@kmib.co.kr
[현장기자-강창욱] 집필진 보호 나선 경찰… ‘TF녹취록’ 만회용?
입력 2015-11-08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