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들어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된 기업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한국 경제가 국가 신용등급은 사상 최고인데 기업은 바닥을 치는 모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8일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 1∼10월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은 부도기업 1곳을 포함, 45개사에 달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61개사 이후 최대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과 2009년에도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은 33곳, 34곳에 그쳤다. 한국신용평가만이 아니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도 각각 56개(1∼10월), 42개 기업(1∼9월)의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세계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기업 실적이 악화된 것이 주요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올해 신용등급 하향 추세가 특정 업종에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신용등급 강등 기업 대부분이 조선·해운·건설업 등 업황 부진 단골 업종에 해당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 수출 경제의 주력산업인 제조업조차 환율과 원자재 가격 하락, 경기 침체 등이 겹치면서 지난해 매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6% 감소했다. 신용등급 강등 기업에는 삼성엔지니어링 등 삼성그룹계열사를 비롯해 두산그룹(두산건설, 두산인프라코어 등) 포스코그룹(포스코플랜텍, 포스코건설 등) 등 대기업도 다수 포함됐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GS에너지 등 대기업 계열 석유화학 업체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업체 등급도 떨어졌다.
신용등급 강등은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회사채를 발행할 때 금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진 상황에서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 기업의 부실은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인 셈이다.
이 같은 기업의 부실은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속에 감춰져 있을 뿐이라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 정부가 최근 ‘좀비 기업’ 퇴출을 본격화한 것도 같은 이유다. 금융 당국도 최근 회사채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연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부실한 기업의 부채가 한국 경제 폭탄으로 작용하기까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 부채의 부실이 한국 경제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면서 “기업 부실을 덮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매달리는 한 모순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 맡긴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국가 신용등급은 사상 최고라는데 안으로는 부실… 기업 신용 무더기 강등
입력 2015-11-08 20:02 수정 2015-11-08 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