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강수진이 한국 관객에게 건넨 작별인사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2300여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오네긴’ 내한공연을 마친 뒤 무대에 선 강수진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10여분 이어진 환호에 강수진은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하지만 ‘강철나비’ 강수진도 고별공연에서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한 지 30주년이 되는 내년 7월 ‘오네긴’ 공연을 끝으로 은퇴한다. 6∼8일 3일간의 공연은 무대를 떠나는 강수진이 한국 관객에게 미리 인사하는 자리였다. 그의 마지막 무대를 보려는 팬들로 입장권은 일찌감치 매진됐으며, 공연 직전 시야제한석이 개방되기도 했다.
‘오네긴’은 방탕한 남자 오네긴과 순진한 여인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을 담은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운문소설 ‘예프게니 오네긴’을 존 크랑코가 발레로 만든 작품이다. ‘카멜리아 레이디’ ‘로미오와 줄리엣’ 등과 함께 강수진의 대표 레퍼토리로 꼽힌다. 은퇴작으로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는 공연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긍이 간다.
오네긴 역의 제이슨 레일리와 호흡을 맞춘 강수진은 ‘명불허전’의 타티아나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1막에서 사랑의 열병을 앓는 순진한 시골처녀부터 3막 첫사랑에 대한 애증으로 갈등하는 귀부인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타티아나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1막 2장 타티아나가 꿈속에서 오네긴과 추는 ‘거울의 파드되’는 사랑에 빠진 연인의 아름답고 관능적인 모습을 선사했다. 반면 3막 2장 방랑에서 돌아와 다시 사랑을 갈구하는 오네긴과 그에게 끌리면서도 뿌리치는 타티아나를 그린 ‘회한의 파드되’는 연인의 격정과 고통이 가슴 시리게 표현됐다.
강수진은 빼어난 테크닉과 섬세한 표현력,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시종일관 관객의 감탄을 자아냈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 50세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여전히 현역 무용수로서 손색없는 기량을 갖추고 있는 그가 지금 은퇴하는 것이 빠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대부분의 발레리나라면 근력이 떨어져 토슈즈를 신고 춤추기도 어려운 나이지만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마지막까지 완벽했다.
커튼이 완전히 닫힌 뒤에도 관객들은 객석을 떠나지 않고 한동안 강수진을 연호했다. 일부는 극장 출연자 출입구 앞에서 그를 다시 한번 보기 위해 기다리기도 했다.
이처럼 강수진은 ‘한국 발레사의 전설’로 깊은 발자취를 남기고 무대를 떠났지만 국립발레단 단장으로서 삶은 이어진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발레리나 강수진 ‘눈부신 작별인사’… 국내 마지막 공연 ‘오네긴’서 완벽한 테크닉·연기 보여줘
입력 2015-11-08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