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빨치산’ 출신 혁명 1세대인 이을설 인민군 원수가 폐암으로 사망했다. 북한은 그의 장례식을 ‘국장(國葬)’으로 치르기로 하고 국가장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명단에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빠져 실각설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8일 이을설이 전날 94세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을설은 1921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김일성 주석과 함께 ‘빨치산’ 활동을 했다. 1967년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된 이후 1972년 상장, 1985년 대장, 1992년 차수를 거쳐 1995년 인민군 원수 칭호를 받았다.
북한군 최고 수뇌부인 대원수 바로 아래 계급인 원수에 오른 인물은 6명뿐이다. 김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원수를 거쳐 대원수 칭호를 받았고, 오진우·최광 전 인민무력부장과 이을설, 그리고 2012년 원수 칭호를 받은 김 제1비서가 마지막이다. 이을설은 김일성 일가를 제외한 인민군 원수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빨치산 출신의 군 최고 인물인 이을설을 최대한 예우해 군부에 대한 충성을 이끌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가장의위원 명단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박봉주 내각총리 등 고위 인사가 빠짐없이 들어 있지만 최룡해의 이름은 없었다.
최룡해는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70주년 기념식에 북한 대표로 참석하는 등 김 제1비서의 ‘복심’으로 평가받았다. 지난달 31일만 해도 노동신문에 “노동당 제7차 대회는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 위업 계승의 확고 부동성을 힘 있게 과시하는 역사적인 대회합”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글도 실렸었다.
하지만 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더니 이번엔 국가장의위원 명단에서도 빠진 것이다. 북한이 발표하는 국가장의위원 명단은 북측 최고 엘리트들의 직책 변동을 파악하는 근거로 사용될 만큼 신빙성이 높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최룡해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비서라는 핵심 직책에서 해임되지 않고서는 장의위원 명단에서 빠질 수 없다”며 “이달 초 큰 비리나 불경죄 등 매우 심각한 사건에 연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정보 당국과 통일부 등 우리 정부도 진위 파악에 나섰다. 통일부 당국자는 “건강 이상 등 단순한 개인 신변 문제만으로는 국가장의위원 명단에서 빠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명단에서 빠진 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최룡해가 실각했을 경우 북·중 관계 업무로 인한 문책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가 중국 전승절 참석은 물론 지난달 방문한 중국 류윈산(劉雲山) 상무위원도 만나 응대했기 때문이다. 최근 북·중 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탄 점에 비춰 이에 대한 책임을 물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 담당인 근로단체 분야 또는 정치국 위원으로서의 문제가 발견됐을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최룡해를 다루기 위한 당 정치국 회의가 아직 열리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당적은 유지하고 있지만 업무처리 문제 등으로 공식 활동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중앙통신뿐 아니라 노동신문에 나온 명단에도 누락된 점을 볼 때 북한 언론이 실수했을 개연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이슈분석] 北 ‘빨치산 원수’ 이을설 사망… 최룡해 실각說
입력 2015-11-08 21:32 수정 2015-11-08 2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