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방, 남중국해서 ‘무력 없는 무력시위’?

입력 2015-11-08 21:19
미국의 구축함 라센호가 중국의 인공섬 인근 12해리(22.22㎞) 안을 지날 때 함정에서 헬기를 띄우지 않고 사격통제 레이더도 끄고 조용히 지나간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사실상 ‘무해통항(無害通航: Innocent Passage)’을 한 것이어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효과를 낳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 해군이 지난달 27일 남중국해 순찰 당시 중국 정부를 자극할 만한 군사행동을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는 “라센호가 중국의 인공섬 환초 ‘수비(Subi)’ 인근 12해리 안을 지날 때 사격통제 레이더를 끄고 헬기 이륙이나 군사훈련 등을 일절 하지 않았다”며 “이는 국제법상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중국을 위협하거나 불필요하게 상황을 악화시키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군사전문매체인 국방뉴스는 “라센호가 인공섬을 지날 때 미 해군 정찰기 P-8 포세이돈이 그 해역에 있었지만 인공섬 12해리 안으로 비행하지 않았다”며 “전투의지가 없는 무해통항이었다”고 분석했다. 무해통항은 특정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12해리 안을 지날 때 그 나라의 주권을 위협하는 군사행동이나 정보수집, 항공기 이착륙 등을 하지 않고 신속하게 통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홉스트라 대학의 줄리안 쿠 교수는 “라센호의 통과가 무해통항으로 제한된다면 미국은 중국의 인공섬을 암묵적으로 중국의 영토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아담 클라인 미 외교협회 연구원 등은 “라센호 작전의 모호성은 문제”라며 “군 당국은 이번 작전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지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라센호의 구체적인 작전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도 무해통항 여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엇갈렸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는 “무해통항이었다”고 말했으나 제프 데이비스 국방부 대변인은 “무해통항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7일 로스앤젤레스 레이건 기념도서관 포럼에서 “중국의 부상을 경계해야 한다”며 “항해의 자유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면서도 무해통항 논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마잉주 대만총통과 대담하기 직전 싱가포르국립대학 강연을 통해 “남중국해는 고대로부터 중국의 영해였다”면서 “이 해역을 지나는 항해의 자유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