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는 전 세계 실연자들의 사연과 그 사연이 담긴 물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곳이 있다. 이름하여 ‘실연 박물관’.
전시품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 기증한 일상적인 것들이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그이와 즐겨듣던 음악이라며 CD를 보내온 미국 노부인의 사연은 뭉클하고, 바람난 여자친구를 기다리다 옷장을 부쉈노라며 도끼를 보낸 독일 남성의 하소연은 딱하면서 으스스하고, ‘그 사람보다 그의 강아지가 내게 더 많은 걸 남겼다’는 설명이 붙은 강아지용 장난감을 보면 웃음이 터진다. 관람 후에는 실연의 상처가 여전한 이들을 위해 박물관이 마련한 처방전이 준비돼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5000원짜리 ‘나쁜 기억 지우개(사진)’다.
사랑이 끝났을 때 청승맞게 술에 기대는 대신 쿨하게 타이레놀 한 알 먹으라는 조언을 한 학자도 있다. 미국 UCLA 심리학과 나오미 아이젠버거 교수는 인간관계에서 거부당했을 때 감정적 상처를 느끼는 뇌의 영역과 신체적 고통이 있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분이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따라서 진통제를 복용하면 차였을 때 느끼는 정서적인 아픔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영화, 가요의 소재로 신문 문화면에나 등장하던 이별 이야기가 폭력·살인 같은 강력범죄의 동기로 사회면까지 진출한 요즘, 타이레놀이나 지우개 같은 처방은 천만의 말씀이다. 인터넷에는 ‘퍼펙트한 안전이별법’ 같은 ‘민간요법’이 떠돈다. ‘안전이별’이란 해코지 걱정 없이 헤어진다는 뜻으로, 가족이 중병에 걸려 오래 간호해야 한다고 하거나 한술 더 떠 치료비가 필요하니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는 식이다. 최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다뤄 화제가 됐을 만큼 ‘웃픈’(웃기면서 슬픈) 아이디어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던 화장품 카피가 있었다. 그 광고처럼 ‘사랑은 하는 것보다 끝내는 법이 중요하다’고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는 걸까.
권혜숙 차장 hskwon@kmib.co.kr
[한마당-권혜숙] 안전이별
입력 2015-11-08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