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66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 대만 총통 마잉주가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서로 ‘선생’으로 호칭하고 회담장엔 양측의 국기도 없었다. 겉보기엔 회담 내용도 기존의 입장에서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했던 ‘92 공식(共識)’과 양안 관계의 평화적 발전, 중화문화의 진흥 협력 등 그동안 되풀이했던 당연한 내용을 강조했다. 일회성 정치 이벤트 같았던 1시간 남짓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의미는 그리 간단치 않아 뵌다. 내용보다는 정상회담이라는 형식 자체가 중요했다.
1992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중국과 대만의 반관반민 조직인 해협회(海協會)와 해기회(海基會)가 ‘92 공식’에 합의해 중·대만 교류의 초석을 다졌다면, 23년 후에 열린 양안 정상회담은 양안 관계를 전략적으로 재정립했다. 베이징 정부는 중·대만 간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거나 대만을 일개 성(省)급 지방정부로 폄하해 왔던 과거와는 달리, 정상회담 상대로 승격시켜 ‘전략적 이익’을 선택했다. 또 당근책으로 대만의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과 신실크로드 건설 참여를 수용했다. 대만의 국제무대 외교 고립을 완화하고 사실상 다른 회원국과 동등한 반열에 올려주겠다는 의미다.
무엇이 중국을 변하게 했을까. 중국의 태도 변화는 대만 내부 상황 변화와 남중국해에서 미국과의 갈등 심화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다.
2014년 말 대만의 정치대학교 연구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만 주민 중에서 자신을 ‘대만인’ ‘대만인이자 중국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각각 61%, 33%였던 데 반해 ‘중국인’으로 답한 사람은 4% 미만이었다. 또 영원한 독립이나 독립지향 또는 분단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비중이 무려 78%에 달했으며, 가능하면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 입장은 단 1%에 불과했다. 장기적으로는 통일을 지향한다는 입장까지 합해도 9%였다. 내년 1월 있을 총통 선거에서 이변이 없는 한 독립지향성이 상대적으로 강한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선출되리라는 것이 대만 현지의 지배적 전망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중국과 대만의 최고지도자가 대등한 상대로 만났다는 형식을 통해 대만 주민의 피해의식과 독립지향성을 완화시키려는 시도다.
시진핑의 또 다른 속내는 대만의 격을 올려줌으로써 ‘물보다 진한 피’로 대만과 미국의 끈끈한 관계를 떼놓겠다는 것이다. 1958년 8월 중국은 대만령 진먼다오(金門島)에 대규모 포격을 단행했고, 미7함대의 대만해협 진입으로 ‘대만 해방’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중국 지도부는 기억한다. 만약 남중국해에서 미국과의 갈등이 고조될 경우, 미국은 대만인의 독립지향성을 이용해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 등 대만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에 있어서 대만은 미국에 있어서 쿠바와 같은 지정학적 아킬레스건이다. 더욱이 대만 주민의 독립지향 정서와 미국의 ‘재균형’ 전략이 결합될 경우, 중국에는 ‘미국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중·대만 정상회담의 형식에서 볼 수 있었던 중국의 태도 변화는 중·미 간 치열하게 전개되는 ‘숨은 냉전’의 편린(片鱗)이다. 우리사회가 남북한 관계 발전에는 뒷전인 채 성급한 통일 논의로 허송세월하는 동안, 중·미 갈등 구조의 불똥이 한반도로 뛸까 우려된다.
남북한 간의 경직된 긴장관계는 중·미 간 전략 경쟁에 쉽게 이용당할 수 있다.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적색경고 신호만 보낼 것이 아니라 북한이 스스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도록 녹색신호등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만의 지위를 끌어올려 실리를 도모하는 베이징 정부처럼.
오승렬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한반도포커스-오승렬] 中의 양안 정상회담 셈법
입력 2015-11-08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