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쿄 출장을 다녀왔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와 일본신문협회가 양국을 오가며 이어온 세미나가 올해로 49회째를 맞아 지난달 29일 일본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주제는 ‘양국 관련 보도에 대한 특징과 과제’. 대신 울어줘야 하는 곡쟁이 노릇의 양국 미디어가 감정이입이 지나쳐 과잉·폄하·왜곡 보도는 없었는지를 돌아보고 경계하자는 뜻이었다.
모두 공감했다. 다만 양국 관계가 그간 경색국면이 이어진 탓인지 양국 미디어 간 미묘한 거리감도 있었다. 상대에 대한 ‘위화감’ ‘피로감’ 등의 표현이 일부에서 제기됐다. 미디어가 정부 대표는 아니지만 국익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양국 미디어 간 거리감은 양국 정부의 그것보다 가까워야 하며, 관계는 더 긴밀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확인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며칠 더 도쿄에 머물렀다. 이전과 뭔가 다르게 움직이는 일본사회를 들여다볼 요량이었다. 우선 지난달 31일 도쿄 도심 한복판에서 펼쳐진 ‘안보 관련법에 반대하는 어머니의 모임(ママの會·마마노카이)’ 집회를 견학했다. 엄마들이 시민운동의 최전선으로 몰려나온 듯한 표정, 날것 그대로의 신선함이 있었다.
마마노카이는 지난달 26일 현재 2만3196명의 엄마들이 동참을 선언했고 전국 60여곳에서 자발적인 모임으로 활동 중이다. 올 7월 첫 모임이 열렸다고 하니 확장세가 놀랍다. 그들은 아베정권의 안보법제 강행과 그 이후를 염려한다. 이날도 전쟁포기·군대보유불가를 천명한 평화헌법 9조(사진·‘9조 부수지 말라’)를 지키자고 외쳤다.
엄마들뿐만 아니다. 각계각층에서 결성된 29개 시민그룹은 안보법제 반대, 9조 지키기, 아베 타도 등을 외친다. 요즘 일본 전국 곳곳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이들이 주관하는 집회가 열린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올 5월 결성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SEALDs·실즈)’이다. 일본의 학생운동이 1970년 안보투쟁 이후 지리멸렬해진 상황에서 실즈의 등장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 시민사회도 실즈의 등장에 대해 관심이 많은 듯하다. 학생들의 정치 참여는 이미 낯선 풍경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70년 안보투쟁 당시 리더 역할을 했던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실즈 리더들과 긴급 좌담을 열어 그 내용을 책으로 엮어 내놨다(‘민주주의란 뭔가’). 부제 ‘아직 이 나라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가 퍽 인상적이다.
기묘하게도 일본의 학생운동은 안보 문제와 관련이 깊다. 60·70년의 1·2차 안보투쟁이 그랬고 이번에도 아베정권의 안보법제 강행에 대한 반작용으로 학생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역설적인 ‘아베 효과’다. 물론 학생들의 의식을 촉발시킨 것은 아베정권 탓만은 아니다. 마마노카이 등도 비슷하지만 실즈의 문제의식은 2011년의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정부가 보여준 은폐와 무능 비판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마치 3·11과 아베정권의 평화헌법 해석 개악을 통해 학생들을 비롯한 일본 시민사회가 눈뜨기 시작한 듯하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마마노카이, 실즈 등의 운동이 지나치게 이념화되고 극단적인 폭력수단에 의존했던 과거의 투쟁 양상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평화적이며 열려 있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마마노카이는 중앙 조직이 없으며 실즈도 대표가 따로 없다.
도쿄 체류 끝자락에 안보법제 위헌론을 펴는 헌법학자 고바야시 세쓰 게이오대학 명예교수를 만났다(인터뷰는 11일자 게재 예정). 아베 효과와 더불어 일본의 변화 가능성을 묻자 그는 한마디로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뭔가 벌어질 것”이라고 호언한다. 과연 일본의 다른 미래가 열릴 것인지.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아베효과’로 日시민사회 눈뜬다
입력 2015-11-08 1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