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손을 잡아줘야 한다. 혼자서는 세 걸음을 채 걷지 못한다. 9살 소녀는 키 104㎝, 몸무게 20㎏의 작은 몸으로는 버티기 힘든 크고 무거운 오른팔을 갖고 있다. 팔 때문에 자꾸 오른쪽으로 쓰러진다.
지난 5일 경기도 고양 명지병원 9층 병실에 누워 있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퉁퉁한 오른손을 건넸다. 코끼리 다리처럼 크고 거칠었지만 따뜻한 체온과 함께 작고 예쁜 마음이 느껴졌다. 아이의 이름은 풀 마야. 네팔어로 풀은 꽃, 마야는 사랑을 뜻한다. 네팔 인구의 약 5%를 차지하는 따망족인 소녀는 다딩 지역의 한 산골에서 태어났다.
지난 5월 마야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나눠주는 쌀을 받으러 길게 늘어선 줄 속에서 엄마 손을 꼭 잡고 있었다. 4월 네팔을 덮친 대지진으로 마야네 집도 무너졌다고 했다. 얼굴보다도 더 큰 오른손은 금방 눈에 띄었다.
구호활동을 하던 장성란(57) 선교사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말이 없었다. 대신 엄마가 답했다. 지체장애를 앓고 있어 말이 어눌하다고 했다. 마야는 7개월 만에 엄마 뱃속에서 나왔다. 태어났을 때부터 오른손이 굵었는데 자라면서 손과 팔이 계속 커졌다고 했다. 무거운 팔 때문에 6살이 돼서야 엄마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일상생활은 불가능했다. 마야의 병은 희귀난치성 질환인 ‘선천성 윤상 수축대 증후군’이었다.
네팔의 병원에서는 오른팔을 잘라야 한다고 했다. 그 팔과 손을 지켜주고 싶었던 장 선교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메신저를 통해 마야의 사진과 소식을 알렸다. 마침 네팔에서 구호활동 중이던 지구촌사랑나눔의 김해성(54) 목사가 소식을 접했다. 김 목사는 한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명지병원과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단체 등이 나섰다.
마야는 아버지 상커 빌(47)씨와 함께 지난달 23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태어나 처음 탄 비행기였다. 부녀는 카트만두로 가는 길에 옷가지를 담은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새까만 흙이 묻은 딸의 슬리퍼를 품에 안고 휠체어를 밀었다. 서울 구로구의 이주여성지원센터에서 며칠 지내다 지난 2일 명지병원에 입원했다.
의료진의 진료결과 오른팔만 문제가 아니었다. 불룩한 배 안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의료진은 “암일 수도 있다. 정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평소 기침을 자주 하던 마야는 폐렴도 앓고 있었다.
조직검사를 위해 하루 저녁을 굶은 마야는 6일 오후 병실 안에 있는 냉장고를 열고 음식을 가만히 바라보다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TV 속 염소만 물끄러미 쳐다보다 네팔의 집안일이 걱정됐는지 “빨리 수술을 마치고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팔이 왜 퉁퉁 부었는지, 배 안에 종양이 왜 있는 건지, 언제쯤 집에 갈 수 있는지를 9살 소녀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김 목사는 “치료를 안 하고 돌려보낼 수는 없지 않냐”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코끼리 팔’ 희귀병에 지체장애·종양·폐렴까지… 네팔 소녀 손잡아 주는 희망의 손
입력 2015-11-06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