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몽룡(69) 서울대 명예교수가 6일 '여기자 성추행 의혹'으로 대표집필자에서 물러나면서 국정 역사 교과서가 출발부터 꼬이게 됐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집필진 초빙·공모가 한창인 와중에 터진 '대형 악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국정 교과서의 '간판'으로 내놓은 인물이 음주와 성추행 의혹으로 자진사퇴에 이르자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표집필진 선정에서 자진사퇴까지…무슨 일 있었나=최 명예교수는 이름이 공개된 지 불과 이틀 만에 자진사퇴를 선택했다. 국편은 지난 4일 집필진 구성 관련 기자회견에서 대표집필진으로 최 명예교수를 공식 발표했다. 다만 그는 공개된 대표집필자인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오려 했지만 제자 등이 만류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기자들이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최 명예교수 자택으로 찾아왔고 식사와 술자리가 있었다. 최 명예교수는 앞서 찾아온 제자들과 술을 마신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여기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만한 발언과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명예교수는 6일 기자들과 만나 “술 먹은 사실은 기억이 나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한 잔 맛있게 먹은 죄밖에 없지만 잘못했다고 하니 잘못한 것이고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신체 접촉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 사퇴를 종용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아무리 필자난이 심해도 국정 교과서에 ‘성추행 의혹’이란 꼬리표를 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 명예교수는 6일 오후 1시30분쯤까지는 사퇴 의사가 전혀 없었다. 그는 국민일보와 전화통화에서 “많이 억울하다. 국정 교과서 집필은 이미 들어간 상태이고 대단히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서 사퇴하지 않을 뜻임을 분명히 했었다. 이후 30여분 뒤 정부는 최 명예교수의 사퇴를 공식화했다.
◇집필진 구성 제대로 될까=최 명예교수의 성 추문 파문으로 집필진 구성과 명단 공개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될 전망이다. 국정화 반대 측은 “바로 이런 인물들을 걸러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명단을 모두 공개해 검증받게 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교육부와 국편은 이번 일을 ‘집필진 비공개’의 명분으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최 명예교수와 신 명예교수를 두고 “노망난 늙은이” 등 인신공격성 글이 올라오고 있다. 특히 최 명예교수와 관련해 “친일식민사관을 정립시킨 이병도의 제자, 이병도는 매국노 이완용의 조카”란 근거 없는 비난 글이 퍼지고 있다.
심지어 최 명예교수가 4일 기자회견에 불참한 것은 ‘제자들에게 테러당한 것’이라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그러자 전세경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동문회 총무 등은 “감금하거나 몸으로 막는 일은 없었다” “그냥 오늘 안 가시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전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집필진 공모에도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계 원로교수는 “이런 분위기에서 정부가 어떤 카드를 제시해도 선뜻 참여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학자로서 명예를 모두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집필진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제대로 교과서가 만들어질까’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교과서 집필에는 통상 2∼3년이 필요하지만 이번 국정 교과서는 1년 정도의 기간만 주어진 상태다. 교육부는 집필 기간이 짧은 건 맞지만 집필 작업을 밀도 있게 진행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집필진 구성부터 난항을 겪는 데다 설사 구성되더라도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아 집필자들의 심리적 동요가 불가피하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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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06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