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그가 나타나자 단체 관람 온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기념사진을 찍자고 했다. 수묵 추상의 거장 산정 서세옥(86). 그의 작품세계는 미술 교과서에 나올 만큼 한국 현대 미술사에 획을 긋는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그의 기증 작품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기별 대표작 100점을 지난해 내놓았던 것이다. 미술관이 소장한 한국화 기증작의 30%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브랜드가 된 ‘사람들’ 시리즈 50여점이 소개되고 있는 전시장에서 5일 그를 만났다.
지난달 말 개막한 전시는 입소문을 타고 남녀노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손글씨가 사라진 시대, ‘일획’이 뿜어내는 서체적 추상에 대한 찬탄일까, 묵선과 여백이 빚어낸 인간형상의 생동감에 지친 심신이 위안을 받는 것일까.
‘묵림회’ 얘기부터 꺼냈다. 60년 서울대 미대 출신 동양화가들이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수묵을 실험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1회 졸업생으로 당시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가 주축이 됐다.
“해방이 됐어요. 그런데도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주관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서 떵떵거리던 친일화가들이 장악하지 뭡니까. 그러니 인물화는 입술, 눈썹 등을 세필로 그리던 우키요에풍 미인도가 입선 되고, 산수화도 화선지에 물을 뿌려 복카시(그라데이션) 효과를 내던 일본풍이 더 잘 나갔습니다. 그런 기법으론 새벽 풍경, 초저녁 풍경 밖에는 안나오지요. 기가 찬 일이이었습니다.”
왜색풍과 국전의 보수성에 반대하며 수묵에서의 청년 정신을 기치로 내건 묵림회가 탄생한 배경이다. 국전에서 거푸 수상했던 그가 국전을 거부하며 만든 단체인 만큼 화단에 던진 충격은 컸다. 묵림회는 연 3, 4회 전시를 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럼에도 3년여 만에 해산선언을 했다. “충분히 취지는 알렸다. 미술운동도 오래되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느냐”는 설명이었다.
자신의 현대적 수묵이 서양의 영향, 특히 유럽에서 불던 앵포르멜(서정적 추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단의 해석에 대해서는 반박했다. “앵포르멜은 유럽에서도 금방 사라진 흐름이었다. 영향 받을 것도 없었다”며 “내가 서구미술 영향을 받아 새로운 미술 운동을 했다는 식의 해석은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청산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수묵추상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도 달갑지 않다.
“내 그림은 추상이 아니에요. 구상·비구상(혹은 추상)의 구분도 다 서구적인 기준인 겁니다.”
그림을 시작한 20대 청년기부터 평생을 전통 재료인 지필묵을 고집해오고 있다. 한데 붓이 대빗자루처럼 크고 길다. 두 손으로 부여잡고 닥종이 위에 서서 행위예술 하듯 붓질을 한다. 10여분만 해도 온 몸에서 땀이 흐른다. 건강 비결을 물었더니 “그림은 우주의 에너지를 지필묵을 빌려 내 손아귀에 잡아채는 일이다. 힘이 없으면 되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서 화백에게 아름다움은 정기(精氣), 즉 우주 에너지의 충만함을 일컫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의 강물이 붓끝에 넘쳐 쏟아질 때 나는 기쁘다”고 했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내세우며 후배 세대들이 지필묵을 버리는 게 그는 못마땅하다. “인사동에 붓 가게, 벼루 가게가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컴퓨터로 톡톡 치면 색깔까지 나오는 세상이니 편해졌다고 하지요. 하지만 이게 우리시대 미술의 잘못된 부분입니다. 위기가 올 수 있어요. 용광로를 거치지 않으면 순정한 금이 나올 수 없습니다.”
요즘 한국성을 대표하는 미술로 해외에서 주목받는 단색화의 인기에 대해서는 “장사꾼들의 장사에 함부로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상업주의의 결과라는 얘기다.
그는 줄기차게 사람을 그리고 있다. 왜 일까.
“사람이 재밌어요. 외톨이이기도하고, 무리지어 살기도 하지요. 기뻐서 뛰기도 하고 슬퍼서 울기도 하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지 않은가. 40여년을 해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려갈 겁니다. 그래도 한번 그린 사람의 형태는 반복되지 않을 거예요.”
‘사람’ ‘두 사람’ ‘춤추는 사람들’ ‘거꾸로 보는 사람들’…. 그림에 붙여진 제목들이다. 필묵으로, 선으로 빚는 사람의 형태는 단순하면서도 철학적이다. 혼자 서 있는 인간에선 시지프스적 삶의 무게가 떠오르고, 어울려 있는 모습에서는 물결에 흐르는 그물이 연상되기도 한다. 희로애락이 번져 있다.
“분단이 언제까지 갈까. 통일이 되는 날 남북이 함께 손잡고 춤추는 모습까지 그려야 되지 않겠어요.” 구순을 향해가는 노화가가 죽기 전 꼭 한번은 그리고 싶은 사람들 시리즈다.
서 화백은 서울대 미대학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3부자 예술가의 헌신적 매니저 노릇을 하는 정민자(78)씨와의 사이에 설치미술가 서도호(53), 건축가 서을호(51)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6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인터뷰] 수묵 현대화의 선구자 산정 서세옥 화백 “통일의 그날 남북이 손잡고 춤추는 모습 그릴 터”
입력 2015-11-08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