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열 번째 ‘인문주간’ 행사가 열렸다. 남쪽바다 울산의 태화강 느티나무 광장에서는 대학생들이 청소년들의 고민을 상담해 주는 ‘사람도서관’ 행사를 열었다. 서해바다 목포에서는 ‘다도해의 모항, 목포 원도심 활성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인문포럼이 개최되었고, 내륙 깊숙이 자리 잡은 제천에서는 ‘인문학 기행’의 자리를 마련해 지역의 부석사, 소수서원 등 유적지를 탐방하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의 개막식이 열린 서울 건국대에서는 ‘3포 세대’ 등으로 일컬어지는 이 시대의 청춘들을 위한 ‘청춘인문강좌’가 열렸다. 취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소재로 영화감독 등 기성세대 전문가들과 인문학적 상상력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의 대학에서도 ‘Humanities Week’라는 이름으로 대학생과 고등학생 등이 참여하는 인문학 축제를 개최한다. 미국에서는 매년 9월에서 10월 사이, 한 주를 인문주간으로 정해서 언어, 역사, 문화,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데 학생들은 물론 지역주민들도 이 행사를 손꼽아 기다린다. 미국 애리조나대의 인문주간은 해를 거듭할수록 내용이 다양해져 이제는 미국 전역과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행사가 되고 있다. 이를 본떠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린스모하마드대는 대학생들이 대거 참가하는 인문주간 행사를 매년 봄 개최, 인문학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사막만큼 뜨겁다.
한국에서는 2006년 7개 기관, 3만여명이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는 각 지역의 53개 기관, 7만여명의 시민이 행사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인문학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것은 인문학을 통한 소통과 나눔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문학에는 인생을 성찰하고 삶을 통찰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들이 가득하다. 인문주간은 ‘축제’ 하면 떠오르는 유명 가수의 초청공연이나 음주가 없어도 편안함과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문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에서는 실용 학문에 밀려 문사철(文史哲)로 대표되는 인문학 관련 학과의 입지가 위축되고, 서점에서는 자기개발서와 재테크 관련 서적들이 베스트셀러의 주를 이룬다. 이러한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 인문학이 다양한 분야에 접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교육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행사가 바로 인문주간이다. 전국적으로 25개 도시에서 390여개 인문축제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기간 이후 11월까지 그동안 서울에서 개최돼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은 ‘석학인문강좌’를 ‘인문공감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전국 8개 도시에서 확대 개최하는 등 우리 재단은 지속적으로 ‘인문학 대중화’에 노력할 것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이번 행사의 주제는 ‘인문학, 미래를 향한 디딤돌’이었다. 그동안 변화와 도전의 오늘을 성찰했다면,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미래의 인류와 인간애(humanity)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생각해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전국이 빨갛고 노랗게 물드는 계절, 인문학이 전하는 ‘삶의 향훈(香薰)’을 통해서 많은 시민들과 우리의 미래세대인 학생, 청소년들이 인생의 가치를 새롭게 성찰하고 잠시 미래를 사유함으로 인해 우리 사회도 아름다운 색깔로 조금씩 바뀌어 나가길 기대한다.
정민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기고-정민근] 인문학은 미래 향한 디딤돌
입력 2015-11-06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