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학장과 대학 총장을 지낸 노(老) 학자가 은퇴 이후 성경 원문 번역에 매달려 2100쪽 짜리 원문성경을 펴냈다. 이름은 ‘원문 번역·주석 성경(쿰란출판사·사진)’으로 헬라어 성경을 번역한 신약성경이다. 성경은 번역에 그치지 않았다. 10종의 한글성경을 비롯해 33종의 영어 독어 프랑스어 라틴어 성경 번역본들을 직접 비교, 대조해 다양한 번역 표현을 소개했다. 또 국내외 수십 종의 주석을 참조해 중요 구절마다 주석을 달았다. 성경의 기본 자료인 고대 사본도 세밀히 비교 대조했다. 이 모든 것을 한 권에 담았다.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고영민(70) 전 백석문화대 총장을 만났다.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려고 했습니다. 성경 원문의 단어와 문법 형식을 정확하게 문자적으로 번역한 다음, 수용 언어로 전달하는 표현 기법이지요.” 원문의 뼈대는 전혀 손상하지 않으면서 한국인들이 읽기 쉽게 번역한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주석의 경우는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 루터와 칼뱅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해석법을 따랐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대원칙이다. 고 전 총장은 “성경 전체를 흐르는 구속사의 맥락을 따라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번역이 되도록 원어와 문장, 전체 내용, 그리고 사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성경의 출판은 고 전 총장이 번역을 시작한 지 13년 만이다. 2002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4년 전부터는 하루 5시간만 잠을 자며 몰입했다. 원문에서 한글로 번역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를 대조하는 작업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다. 대조만 수십 번씩 했다. 구약 성경도 조만간 펴낸다.
고 전 총장이 성경을 직접 번역한 이유는 더 쉽고 정확한 번역의 필요성 때문이다. 현재 한국교회가 공예배용으로 사용중인 개역개정판 성경은 원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주축이 된 번역위원회에서 영역판(KJV, ASV)과 한문성경 등을 대본으로 번역했다. 구약의 경우 여러 차례 수정과 보완을 거쳐 ‘한글개역판’이 나왔고 이후 지금의 ‘개역 개정판’이 출간됐다.
“번역된 단어나 문장의 뜻이 원문과 차이가 나거나 모호한 부분들이 있고요. 현재는 통용 되지 않는 구어체 표현도 남아 있어서 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마침 올해는 한국 선교 130주년이기도 하고요. 쉽게 번역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지요.”
고 전 총장은 좋은 번역을 위해 성지(聖地) 일대를 20여 차례나 방문해 성경 저자들의 마음을 느껴보려고 했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었다. 사도 바울의 심정을 헤아리기 위해 바울이 떠났던 선교지를 여행했다.
그는 국내에서 히브리어와 헬라어 전문가로 손꼽힌다. 단국대와 총신대, 연세대 교육대학원을 거쳐 이스라엘 히브리대와 그리스 아테네국립대, 영국 런던대에서 공부했고 독일 뮌스터대에서 박사과정을 거쳐 부퍼탈 신학대(Wuppertal Kirchliche Hochschule)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대 시절부터 ‘히브리어 문법’을 비롯해 ‘헬라어 문법’과 ‘성서원어대사전’을 펴내며 원어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세계적 조직신학자인 벌코프의 ‘조직신학’과 찰스 하지의 ‘조직신학’ 등도 번역하는 등 15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고 전 총장은 “성경을 통해 강단이 풍성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원문성경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한다”며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해 달라. 토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老학자 13년 열정, 2100쪽 짜리 원문성경 펴내… 고영민 전 백석대 총장 ‘원문 번역·주석 성경’ 출간
입력 2015-11-08 18:12 수정 2015-11-08 2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