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일본 前 총리 “아베, 애국자로 착각… 자신감 없다는 방증”

입력 2015-11-05 21:32

“아베 총리는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자신감이 없다는 방증입니다. 진정한 애국심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용기를 갖는 겁니다.”

하토야마 유키오(68·사진) 전 일본 총리가 5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린 특별강연을 통해 지난 8월 아베 총리가 발표한 담화 내용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침략’ ‘식민지 지배’ ‘반성’과 ‘사죄’ 등의 키워드가 들어갔지만 문맥을 이해할 수 없었다”며 “‘침략’의 과거를 사죄하는 내용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광복 70년, 한·일 수교 50년에 한·일 관계를 다시 바라본다’는 제목의 특별강연에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역사인식에 대해 인식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안타까웠다”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세가 생긴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이 없었다는 일부 일본 언론에 대해 “세계의 상식은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이 있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런 비윤리성이나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위안부 문제에 대해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시절 일본 정부도 정부와 민간의 협력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을 창설하는 등 여러 사업을 하고자 했다”며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와 협력해 속죄사업의 부족한 부분을 충족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일 관계를 설명하며 하토야마 전 총리는 아키히토 일왕이 한국 지도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힌 사례들을 거론했다. “1995년 무라야마 전 총리는 담화를 통해 반성과 사죄의 뜻을 명확하게 밝혔다”며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한 일본 지도층의 노력을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경제 불황의 시대가 이어지며 일본 국민은 자신감을 상실했다. 주변 국가들이 급속히 발전해 일본인들이 한국과 중국에 대한 관대함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이 일부 일본인의 혐한·혐중 감정을 증폭시켰다”고 덧붙였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우애’의 이념에 입각한 ‘동아시아공동체’ 창설을 주장했다. 그는 “10개 아세안 국가들은 올해 안에 경제공동체를 창설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0년까지 동아시아공동체를 창설하고 싶다고 밝혔다”며 “일본이 선두에 서서 선도자 역할을 할 때”라고 제안했다.

그는 국정 교과서에 대한 질문을 받자 “놀랐다. 한국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일본도 교과서 검정을 하는데 국가가 교과서에 간섭하는 것에 대해 저는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가장 좋은, 알맞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09년부터 이듬해까지 총리직을 맡았다. 아베 담화 하루 전인 8월 13일 서울에서 ‘동아시아평화선언’을 발표했다. 그 전날에는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일제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하기도 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 특강 이후 권숙인 서울대 교수, 이원덕 국민대 교수, 김병연 서울대 교수,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 등이 한·일 관계와 관련해 토론을 벌였다.홍석호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