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웃들과 울고 웃으며 90년… 오는 8일 창립 기념 예배 드리는 가리봉교회 최홍규 목사

입력 2015-11-05 18:47
지난달 29일 서울 가리봉교회 집무실에서 만난 최홍규 목사가 비전센터를 통한 디지털 벤처 단지 복음화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1925년 7월 당시 경기도 시흥군에 속해 있던 가리봉 지역에 큰비가 내렸다. ‘을축년 대홍수’였다. 748.9㎜의 기록적인 폭우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미국 북장로교회에서 파송한 하마련 선교사는 이재민들에게 좁쌀을 나눠주며 복음을 전했다. 처음에는 마을 주민 조영덕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다 그해 11월 가리봉교회를 세웠다. 이듬해 초가 여덟 칸으로 된 교회당을 짓고 봉헌예배를 올렸다. 가리봉교회는 이곳을 한결같이 지키며 주민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8일 창립 90주년 기념 예배를 드리는 가리봉교회의 최홍규 담임목사를 지난달 29일 만났다. 최 목사는 32년간 교회를 이끌던 한상면 목사가 은퇴한 99년부터 가리봉교회를 섬기고 있다.

‘가리봉’은 작은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는 뜻의 지명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이곳은 도시산업화의 상징 같은 곳이다. 교회 역시 시대를 직시하며 지역주민들과 함께 호흡해왔다. 60년대까지는 농촌교회로, 70년대 구로공단이 들어서면서는 도시교회로서 주민들을 섬겼다.

최 목사는 “지방에서 올라온 공단의 젊은 공원들, 고향을 떠나 외로운 이들이 교회를 많이 찾았다”면서 “교회가 이들에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주면서 교회도 함께 부흥했다”고 말했다. 가리봉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으로 당시 ‘성풍회’를 이끌었던 한 목사의 영적 파워에 힘입어 지역 복음화를 이뤄냈다. 교회는 지금도 지역 주민들, 특히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한다. 명절 때마다 쌀 나눠주기 운동을 하고, 겨울에는 김장을 해서 독거노인들과 소년소녀가장에게 전달한다. 최 목사는 “행복나눔위원회를 만들어 어려운 이들에게 1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나눠주고 용돈을 드리는 사업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교인은 주일학교 학생까지 포함해서 2000여명. 예전부터 교회에 다니던 이들 중 형편이 좋아진 사람들은 강남이나 목동 등 주변 지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차도 불편하고 거리도 멀지만 그래도 안양, 인천, 의정부 등 먼 곳에서 여전히 교회를 찾는 교인들이 많다. 최 목사는 “오랜 전통 덕분에 기도에 대한 교인들의 열정이 크다”며 “특별새벽기도 때 500여명이 본당을 가득 채우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든든하고 참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정보통신 업체들로 구성된 디지털단지가 들어서면서 동네 풍경은 확 달라졌다. 벤처기업들이 빌딩 숲을 이룬 것. 하지만 주택가에 있는 가리봉교회와 주변 지역에는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디지털단지의 직장인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최 목사는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디지털단지의 청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자녀를 둔 이들은 교회를 고를 때도 교육부서나 시설 등을 보고 고르다 보니 교회로 이끌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추진되던 서울시의 개발 계획이 무산되면서 교회는 지난해 최종적으로 교회 건축의 꿈을 접었다. 대신 교회 옆 주차장 부지를 이용해 비전센터를 짓기로 했다. 최 목사는 “5층짜리 비전센터를 지어서 카페도 만들고 직장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라며 “그분들과 교회를 연결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교회는 이제 10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최 목사는 “그때에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지 않겠느냐”며 “후임자가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비전센터를 건립하고 좋은 프로그램들을 정착시키는 것이 제 남은 사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