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방침을 발표한 이후 카드사와 밴(VAN)사 간 수수료 갈등이 현실화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변화된 결제 환경에 맞게 밴사가 받는 수수료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밴사는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하 부담을 떠넘긴다며 반발하고 있다. 밴사는 카드사와 가맹점을 연결해주는 사업자로, 고객이 결제한 카드내역 승인을 중계하고 전표를 매입하는 역할을 한다.
5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KB국민카드가 밴사들과 수수료 책정방식을 변경하는 협상을 시작했다. 결제 건당 일정수수료를 지급하는 정액제 방식을 결제금액에 따라 지급하는 정률제로 바꾸는 방안이 핵심 논의사항이다. 앞서 신한카드도 지난 7월부터 수수료 일부를 정률제로 바꿔 시행하고 있다. 현재 카드사들은 밴사에 건당 수수료로 120원 안팎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수료에는 승인수수료, 매입 데이터 확정 및 전표수거 수수료 등이 포함된다.
카드사와 밴사 간 수수료 갈등은 예고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신용·체크카드 사용액이 계속 늘어나면서 건당 수수료를 받는 밴사들도 성장세를 거듭해 왔다. 반면 소액결제가 늘어나면서 카드사들은 밴사에 정액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에 부담을 가지게 됐다. 삼성페이 같은 간편결제가 등장하면서 카드사들이 밴사를 통해 전표를 매입해야 하는 부담도 줄고 있다.
금융위가 가맹점 수수료 인하 방침을 발표한 후 카드사와 밴사 사이에 수수료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를 현재보다 최대 0.7% 포인트 낮출 경우 가맹점들이 부담하는 수수료는 6700억원 줄어들 전망이다. 카드사들의 가맹점 수수료 중 밴사에 지급하는 수수료 비중은 10% 안팎이지만 규모는 상당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카드사들이 밴사에 지급한 수수료는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카드사들은 수수료 지급기준을 정률제로 바꾸면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른 손실을 일부 만회할 수 있다고 본다.
밴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밴 업계에서는 카드사의 요구를 수용하면 수수료가 최대 30%까지 줄어들 것으로 본다. 카드사들이 3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밴사에 떠넘기는 셈이다. 특히 밴 시장에서 대형 가맹점 비중이 큰 점도 문제다. 매출이 큰 가맹점일수록 밴 수수료 수익도 늘어나는 구조여서 밴사들은 대형 가맹점 확보 차원에서 막대한 리베이트(부당한 보상금)를 제공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당국이 리베이트 금지 가맹점 기준을 연매출 100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춘 만큼 밴사도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업계에서는 리베이트 위주 영업방식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밴사를 거치는 시스템은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1980년대 말 도입된 방식”이라며 “변화된 결제 환경에 맞게 밴사와 카드사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시간을 갖고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액이냐 정률이냐를 따지는 논의의 틀을 더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이슈분석] “정률제 불가피”-“손실 전가말라”… 카드-밴社 ‘수수료 싸움’ 현실화
입력 2015-11-05 19:36